李太洙 칼럼-기본 중시하고 '平常心' 되찾아야

입력 2006-01-03 11:34:05

갈등'반목 넘어 화해와 관용 / 정직'진실 존중되는 사회로

새해에는 '나'부터 새로워져야 한다. 성냄과 미움을 밀어낸 자리에 용서와 사랑을 앉히고, 갈등과 반목을 넘어 화해와 관용으로 가는 바람이 불어야 한다. 아래위를 막론하고 '너 죽고 나 살자'를 '나 살고 너 살자'로 바꿔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너무 아집과 이기심에 빠져 있었다. 겸허하게 제자리로 돌아가 성실하고 정직하게 제 일을 하는 '기본'을 잊고 있었다. 하늘을 따르는 평상심(平常心)을 저버리고, 마음속 '욕망의 왕궁 짓기'에 혈안이었다.

우리 사회의 혼란과 어둠은 최우선 가치를 물질과 자기중심에 두는 데서 비롯되기도 했다. '빨리빨리 증후군'과 '한탕주의'가 이를 부채질했다. 탐욕을 서슴지 않고, 진실과 분별을 저버리면서 거짓과 무분별을 벗지 못해 꼬이고 뒤틀렸다. 갈등과 편 가르기가 만연했다.

금력과 권력을 향한 광기는 급기야 국가의 정체성마저 위협하는 방향으로 치달아 국론이 분열되고, '거짓'으로 포장된 '참'이 미증유의 혼란과 공황 상태를 연출하기도 했다. 물질도 정신도 양극화로 치달았다. 적게 가진 사람들의 위화감과 박탈감을 더욱 키웠다.

역사가 말해 주듯이, 우리는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그럴 수 없는 풍토나 압력까지 우리 사회에 퍼져 있다. 우리를 정신적 공황에까지 몰고 간 황우석 교수팀 이야기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지만, 악몽 같기만 하다. 한 연구원은 줄기세포 '바꿔치기' 논란 조사 과정에서 잘못인 줄 알고도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자신은 제대로 말할 위치도 아니었다고 했다.

속이기나 알고도 한 짓, 몰랐던 척하는 일은 말할 나위 없지만, 모르고 한 일이라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공동체에 손실이나 해악을 끼쳤는데도 '몰랐다'고 하면 그만일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오이디푸스는 몰라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했다. 그 사실을 알고 난 뒤 왕의 자리를 떠났다. 바늘로 자신의 눈을 찔러 장님이 됐다.

오늘의 세태는 오이디푸스의 교훈 근처는커녕 무감각을 한참 넘어 '얼굴에 철판 깔기'가 다반사다. 마각이 드러났을 때도 '모르쇠'요, '남의 탓' 타령이다. 책임지려 하는 사람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아래'보다 '위'가 더 심하다.

우리는 권력이나 금력 앞에 무기력해질 때도 적지 않았다. 소속 집단에서도 한가지였다. 소속 집단의 이익 문제에 부닥치면, 복종이나 억압 상태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었던가. 이 같은 폐단은 극심한 가치관의 혼란을 부르고, '잘못'을 키우는 데 힘을 보태는 역할을 했다. 심지어 그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으면 '왕따'가 되기 십상이었다.

윤리'도덕은 '지체'를 넘어 '땅에 떨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날보다도 더 숨 막힐 지경이라면 성낼 사람들이 있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사회 곳곳에서 온갖 거짓말이 판을 치고, 그런 거짓 판치기 정황 속에서 우리가 날로 무디어지고 있다면 안 될 일이다.

정치권과 정부는 편을 갈라 싸우면서 온갖 상처를 만들었다. 패거리 지어 민생은 뒷전인 채 갈등과 분열, 추락으로 치달았다. 양극화는 날로 골이 깊어지고, 어느 일 하나 안 꼬이는 게 없었다. 뚜렷한 현상이라면 성과와 속도 부풀리기, 탐욕과 거짓, 땅에 떨어진 윤리의식 등 병폐들만 극명하게 드러냈다.

우리는 그런 지난날의 상처를 딛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 혼란과 어둠 거꾸로 돌리기와 기본 중시 풍토가 확산돼야 한다. 평상심을 되찾아야 한다. 특히 정부와 정치권부터 정직과 진실을 담보로 거듭나야 한다. 다가오는 지방 선거를 통해서는 아래위가 함께 새 전기를 만드는 교향악을 빚어야 한다. 이젠 민생 우선의 새 바람이 희망의 지평을 활짝 열 수 있어야 한다.

논설주간 tspoe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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