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논단-학자와 사업가

입력 2006-01-03 11:34:59

황우석 교수의 논문 조작 사건을 놓고 이곳에 있는 한국 비즈니스맨과 얘기를 나누어 보았다. 이 분은 황우석 교수의 팬은 아니다. 그러나 사업가적인 시각에서 볼 때에는 원천기술이 있는 것이 중요하지 그 내용을 과장한 것은 큰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사업을 하는데 흔히 있는 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업가들 중에는 보유 기술을 과장해서 사업을 따내고 이것이 성공의 기반이 된 사람들이 많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아직 만들지도 않은 프로그램을 이미 만들었다고 내세웠다. 인텔 8080마이크로프로세서가 나오고 벤처회사 MITS가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 앨트에어(Altair)를 만들면서 운영체계인 베이식(BASIC)소프트웨어를 공급해 줄 업체를 찾고 있을 때였다.

당시 하버드대학에 재학 중이던 빌 게이츠는 앨트에어에 관한 기사를 읽자마자 MITS사에 전화를 걸어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며 로버츠 사장과 면담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동업자 폴 앨런과 밤을 새우며 프로그램을 만들어 나갔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능력에 대해서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다른 업체들이 먼저 계약을 맺어서 앨트에어에 프로그램을 장착하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선점하는 사람이 개인용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표준을 장악하고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빨리 MITS 사장을 만나고 프로그램 공급계약을 맺어야 했다.

현대그룹의 고 정주영 회장도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베일 산업항만공사를 따낼 때에 없는 기술을 있다고 시방서에 써냈다. 20세기 최대의 역사(役事)라고 불리던 주베일 공사를 최저가격인 9억3천만 달러에 따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기술인 OSTT(외항유조선 정박시설) 공사지식이 전무했다.

정주영 회장은 OSTT기술 문제를 공사를 따낸 다음에 해결했다. 이 기술을 갖고 주베일 항만공사 입찰에 참여했다가 현대에 밀려서 떨어진 브라운 앤 루츠사를 하청업체로 끌어들였다. 브라운 앤 루츠는 OSTT공사만으로 9억 달러가 필요하다고 응찰했었다. 그러나 입찰에서 떨어진 뒤 해상구조물 건설장비들을 사용하지 못하고 임대료로만 하루에 5만 달러를 허공에 날리고 있었다. 정주영 회장은 이 상황을 이용해서 브라운 앤 루츠사와 헐값에 기술협약 및 장비임대 계약을 맺었다.

사업가들이 이렇게 아직 없는 기술을 있다고 내세우는 것은 사업의 성패에 속도전이 종종 중요하기 때문이다. 신기술을 빨리 내놓아야 사업을 따내고 표준을 장악하는 등 선발주자의 이점을 누릴 수 있다. 과장 내지는 조작했던 것들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경우도 많다. 기술발전에는 과거의 속도와 패턴이 있기 때문에 필요한 기술이 곧 개발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도 있다.

아직 자세한 정황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황우석 교수도 이와 비슷한 사업가적 경쟁에 뛰어들었던 것 같다. 그가 주장하는 것처럼 원천기술을 갖고 있다면, 일단 국제적인 논문출판을 통해 기선을 제압하고 연구인력과 자금을 끌어들인 뒤 과장했던 부분은 후속논문을 통해 해결해 나간다는 전략을 세웠다는 추론을 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학자로서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학문의 생명은 진실성에 있다. 주어진 데이터 내에서 논문을 쓰고 그 이상은 추론 내지 미래의 가능성이라고 밝혀야 한다. 이번 사건을 기점으로 학자로서 황우석 교수의 생명은 끊어졌다고 할 수 있다. 황우석 교수에게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사업가로서의 생존 여부이다. 정말 상당한 수준의 원천기술이 있다면 자신의 돈을 투자해서 황우석 교수와 벤처기업을 만들려는 사람들은 충분히 많이 있을 것이다.

황우석 교수와 같은 사례가 나오는 데에는 학계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크게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대학과 사회가 점점 사업가적인 학자를 장려하고 있다. 훌륭한 책을 쓰기보다는 큰 프로젝트를 따내는 학자가 우대받는다. 이러한 토양에서 제2, 제3의 황우석 교수가 나타날 가능성은 항존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지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이기도 하다.

신장섭/싱가포르 국립대학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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