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간 독일에서 생활한 경험을 바탕으로 '독일 견문록'을 쓴 김영찬 한국은행 조사국 국제무역팀장은 그의 저서에서 "독일인들은 은행 계좌 이체, 기차표 끊기, 물건 주문 등 일상 생활에서 매우 느리게 움직인다. 성질 급한 한국인들은 참고 기다리기 힘들 정도로 느리게 산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일상생활에서 독일 사람들이 소음에 무척 민감해 각종 소음을 철저하게 규제해 시끄럽고 활력이 넘치는 한국과 반대되는 일면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인들은 이처럼 실질적이고 느긋한 생활방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겔젠키르헨은 1847년까지만 해도 인구 600명의 작은 마을이었으나 1950년대 이후 철도 개통과 탄전 개발에 따라 발전, 1975년에 도시로 탈바꿈하면서 현재 27만여 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에센, 뒤스부르크, 뒤셀도르프, 도르트문트 등 부근의 공업도시와 함께 루르 지방 북부의 공업지대를 형성, 철강 화학 기계 유리 등의 공업이 성하다. 석탄산업의 중심지였던 전통을 이어 현재 태양열산업의 중심지로 국가적 지원을 받고 있다.
겔젠키르헨은 작은 도시지만 가장 눈길을 끄는 월드컵 경기장을 만들었다. 아우프샬케(AufSchalke) 경기장은 일본 삿포로, 네덜란드 안하임과 함께 세계 3대 '움직이는 잔디 구장'으로 잔디구장을 서랍처럼 밀어넣었다 뺏다 할 수 있게 돼 있다. 넓이 1만㎡의 콘크리트 바닥 위에 잔디를 심어 4개의 전기 모터로 경기장에 밀어넣는 데 5~6시간이나 걸리며 비용도 한 번에 1만5천 유로(약 1천860만 원)나 든다. 하지만 축구장 지붕에 가려 잔디가 좋은 상태를 유지하지 못할 경우 3개월마다 교체해 주어야 하는데 그 비용이 10만 유로(1억2천400만 원)에 달하는 것에 비하면 경제적이며 이 구장 잔디를 잘 관리하면 3년간 사용할 수 있다.
구장 시설을 태양광 발전(發電)을 통해 하는 친환경 구장으로 유럽축구연맹(UEFA)으로부터 최고 등급인 별 5개짜리 경기장으로 선정됐다. 분데스리가 샬케04의 홈구장인 이 경기장은 1억9천200만 유로(약 2천308억8천만 원)를 들여 지었으며 막대한 건설비 때문에 지역 맥주 회사 펠틴스에 경기장 이름을 팔아 '펠틴스 경기장'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겔젠키르헨에서 차로 30분간 달리면 나타나는 도르트문트는 59만여 명이 사는 루르 지방 동부의 상공업 중심지. 13세기 한자동맹에 가입한 후 상업활동이 활발해졌고 1803년 자유도시로서의 권리를 상실하여 쇠퇴하였으나 루르 탄전의 발굴과 19세기 말 운하의 완공으로 공업 뿐 아니라 상업의 중심지로도 빠르게 발전해왔다.
도르트문트의 베스트팔렌 경기장은 1974년 월드컵 경기를 위해 만들어진 경기장으로 22년만에 월드컵 경기를 다시 치르기 위해 4천550만 유로를 들여 재건축했다. 독일 분데스리가의 축구 팬들도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축구 팬들 못지 않게 매우 열정적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특히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의 팬들의 열광적인 응원은 유럽 내에서도 소문날 정도다. 홈 팬들의 자리인 베스트팔렌 경기장 남쪽 스탠드에서 터져 나오는 욕설과 소음은 방문 팀들에게 두려움을 안겨준다. 2001년 UEFA컵대회 결승전이 열렸고 2004-2005시즌에는 경기당 평균 7만7천여 명의 관중이 구장을 찾아 독일내에서는 물론 유럽 전체에서 가장 많은 관중이 찾은 구장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문호 괴테의 '파우스트'의 무대이자 세계적인 작곡가 요한 세반스찬 바흐가 살았던 라이프치히는 인구 49만7천 명으로 독일의 열 두번 째 규모 도시이다. 라이프치히라는 도시명은 7세기경 이 곳에 취락지를 만든 슬라브 계통 소르비아어인 리프치(보리수 근처의 장소라는 뜻)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중세 시대에 요즘의 박람회와는 의미가 다른 독점 시장권을 부여받은 '메세'가 열렸으며 이로 인해 '현대 메세의 어머니' 역할을 했다. 그러나 동독으로 분리되면서 도시의 발전은 정체 상태에 접어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 전 라이프치히는 축구의 중심지였으나 구 동독에 속하면서 축구 열기가 줄어들었고 이번에 통일 독일을 상징하는 의미로 월드컵 경기를 열게 됐다.
라이프치히의 첸트랄 경기장은 1956년 세워진 경기장에 9천60만 유로(1천360억 원)를 들여 재건축했다. 옛 경기장은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규모였으나 이번에 4만4천여 명으로 관람석 수를 줄이면서 현대식으로 재단장했다. 특히 흩어지는 빛을 모아서 통과시키는 첨단 지붕은 관중들의 관람 분위기를 쾌적하게 한다.
김지석기자 jiseok@ms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