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살리자, 지역을 살리자-추락하는 경북대

입력 2006-01-02 10:11:11

과거 명성에 안주…취업률 56% '전국 178위'

'긴장감이 없다.'

경북대가 처한 현 위치를 단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인재유출은 수도권 탓이고 졸업하고도 직장 못 구하는 것은 지역 경기 탓일까. 교육인적자원부가 당장 오는 2007년까지 '2004년 대비 입학정원 10% 감축 의무화' 등 강력한 국립대 구조개혁을 시사한 마당에 경북대는 구체적인 전략도, 비전도 없다. 타 대학은 총장부터 발 벗고 뛰는 판에 경북대는 과거의 명성에만 안주해 '골목대장 노릇'만 하려 한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경북대가 변혁의 모범을 보이고 지역 발전의 '엔진'이 돼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주인 없는 학교, 경쟁력 부재

지난 11월 말 대구 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06학년 대학입학정보 박람회'. 고려대, 이화여대, 한양대 등 서울지역 대학 6곳과 영남대, 계명대 등 지역대 8곳이 참석한 이 행사에 경북대는 전기·전자·컴퓨터 1개 학부의 부스만 차렸다. 경북대 측은 "교내 입시 설명회와 일정이 맞물렸고 홍보효과도 크게 기대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대학관계자는 "다른 대학은 시간과 돈이 남아 대구까지 내려왔겠느냐"고 헛웃음쳤다.

경북대의 추락세는 눈에 확연히 보일 정도로 현저하다.

'한강이남 최고 대학'이라는 자부심은 70, 80년대를 정점으로 줄곧 내리막길이다. 그나마 법대, 사범대, 전자공학부 등 경쟁 우위에 있는 몇몇 학과들도 다른 대학들에 추월당하고 있다.

지난 2003년 경북대 교수회가 가진 '지방분권시대 경북대의 역할과 위상제고방안'에 관한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우수 학생 유치노력 소홀 △구조조정 미흡 △관료적인 내부문화 등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대구전략사업기획단 이정인 단장은 "경북대가 수년째 제자리를 맴도는 동안 한 단계 낮았던 대학들이 빠른 속도로 추월해갔고 경북대의 상대적인 퇴보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삼성 LG 등 대기업 임원급에서 경북대 출신들이 가진 '맨파워'가 과연 얼마나 더 지속되겠느냐는 것. 한 대기업 임원은 "사내에 대학 후배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며 "10년 후면 경북대 출신 임원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한 단과대학 관계자는 "일례로 15개나 되는 단과대학이 꼭 필요한가"라며 "교과내용이 중복되는 학과나 실제 채용시장과 동 떨어진 학과를 과감히 조정하는 등 내부혁신이 따르지 않으면 위상 추락은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국립대의 경직성도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다.경북대의 2005년 전체 예산 중 인건비 비율은 62%로 지난 2001년 이후 매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절반이 넘는 예산을 학교자체의 유지를 위해 쏟아붓고 있는 것. 반면 같은 해 계명대의 인건비 비율은 34%였다.

경북대 사범대 한 교수는 "일반 공공조직처럼 끊임없이 낭비를 만들어내는 구조"라며 "관리인력을 대폭 줄이거나 명퇴제도를 활용하는 등 대학 자체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시점에 왔다"고 말했다.

또한 경북대는 오는 2007년까지 입학 정원의 10%(440여 명)를 줄여야 하지만 2005년에 고작 39명을 줄였을 뿐이다. 당장 2006년부터 정원감축에 들어가야 하지만 여전히 내부검토 중이다.

경북대 비전임교수 관계자는 "사립대와 달리 학생이 덜 와도 교수·교직원의 신분유지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는 탓에 우수한 학생이 오든 말든, 학교 경영이 어떻게 되든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현재 내부 분위기를 볼때 구조조정이 거의 불가능한 시스템이라는 것.

◇투자도 소홀하다

경북대의 지난 2004년 기준 교수 1인당 논문 수는 1.09편으로 부산대(0.97편)보다 앞섰다. 최근 10년 간 논문 수에서도 전국 8위를 차지했다. 교원 연구비도 지난해까지 5년 간 390억 원에서 880억 원으로 대폭 뛰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측은 "경북대가 지명도 면에서 여전히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생들이 피부로 느끼는 지표는 사뭇 다르다.

지난해 10월 교육인적자원부가 전국 371개 4년제 대학 및 전문대 졸업자 53만여 명을 대상으로 취업률을 조사한 결과 경북대는 178위(순수 취업률 55.6%)에 머물렀다. 대구대 165위(58.1%), 계명대 173위(56.2%)보다 낮았고 전국 4년제 대학 평균 취업률(66.5%)에도 미치지 못했다.

사법시험 정원이 1천 명으로 늘었지만 올해 경북대 출신 사법시험 합격자는 18명으로 최근 5년간 오히려 감소추세다. 법대 전임교원 1인당 학생 수는 42.6명으로 경북대 전체 단과대학 중에서 강의실이 가장 복잡하다.

한 법대 학생은 "지역 사립대 경우 사시 1차 통과자에 대해 기숙시설 및 전액 장학금 지원 등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데 우리 학교는 법대 고시원 공간이 전부"라고 말했다.

경북대 사범대 졸업생의 2005년 교원임용고시 합격률은 48.9%로 전년 66.6%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같은 기간 대구대는 27.6%에서 26.8%, 영남대는 28.7%에서 35.6%로 비슷하거나 높아졌다.

도서관의 학생 1인당 열람실 좌석 수는 영남대, 계명대가 0.3석이지만 경북대는 0.13석에 지나지 않는다. 경북대 측은 "장서 수가 늘어나면서 도서관내 공간이 줄어 전체 열람석이 2년 전 4천500석에서 3천450석으로 줄었다"고 설명했다.

◇경북대가 앞장서야

이정인 단장은 "경상대와 공대를 분리·특성화하는 등의 혁신전략을 통해 지역이 본받을 수 있는 사례가 돼야 한다"며 "대학총장이 경영자라는 인식을 갖고 강력한 리더십하에 변화를 지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보돈 교수회 의장은 "아직도 경북대는 재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있고 역량도 있다"면서 "국립대학의 예산편성, 직원 인사권에서 자율성을 넓힐 수 있도록 정부의 법·제도적 개혁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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