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가락처럼 흘러내린 철제빔과 군데군데 무너져 내린 천장. 바닥은 그을린 상가구조물과 판매대의 잔해로 뒤엉켜 있었다. 여전히 매달려 있는, 반쯤 타다 만 옷가지들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더했다. 통로 곳곳은 높은 온도를 이기지 못해 바닥까지 처진 전깃줄과 옷걸이가 엉켜 마치 폭격을 맞은 듯했다.
1일 오후 기자가 들어가 본 서문시장 2지구 상가 화재 현장. 화재 발생 나흘째를 맞은 2지구 내부는 '처참' 그 자체였다. 출입이 전면 차단됐던 상가는 이날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3시간 동안 1층과 지하점포를 대상으로 물건 반출이 허용되면서 일부 개방됐다.
상가 2, 3층은 현장 감식이 끝나면 안전여부에 따라 현금과 장부 등의 반출을 허용할 계획. 상인들은 이날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한 가지 물건이라도 더 건지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상가 바닥에는 여전히 발목까지 물이 차올라 있었다. 사고대책본부는 양수기 40대를 동원해 이틀에 걸쳐 물을 빼냈지만 물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기자는 우선 서편 지하 상가로 내려가 봤다. 칠흑같은 어둠 속, 조그만 휴대용 손전등에 의지한 상인들이 하나라도 더 건져내고자 애를 쓰고 있었다.
불에 탄 점포는 많지 않았지만, 식당가 전체가 그을음으로 뒤덮여 있었고 불길에 잡아 먹혀 반쯤 떨어져 나간 간판은 그날의 참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불길이 처음 치솟은 것으로 소방당국이 추정하는 1층 서편의 피해는 극심했다. 상가 내부는 아예 사람이 들어갈 수조차 없을 정도로 심하게 내려 앉아 있었다. 소방관들의 진입도 어려운 상황.
현장에 있던 사고대책본부 관계자는 "건물붕괴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며 "안전상의 문제 때문에 이 곳은 아예 상인들의 출입을 막고 있다"고 말했다. 30년 동안 신발 가게를 해왔다는 이모(55) 씨는 기자 옆에서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점포가 1층 중앙 통로 쪽이라 다행히 불길은 피했지만 쌓아놓은 신발이 물에 온통 젖어버려 못쓰게 된 것.
그는 "5시간이 넘게 물건을 빼냈지만 역부족"이라며 "3일째 잠 한숨 못자고 있지만 당장 피곤함 보다는 막막함이 더 크다"고 푸념했다. 화염의 손길이 스쳤던 1층 동편으로 오자 불에 탄 점포는 눈에 띄게 줄었다. 그러나 피해는 여전했다.
한 커튼 점포에 진열된 커튼에는 여전히 물이 흘러 내리고 있었고 그을음과 재로 뒤범벅 돼 있었다. 한 상인은 "다행히 물건들이 불에 타지는 않았지만 못쓰게된 것은 마찬가지"라며 "화재보험에 들어있긴 하지만 물건이 불에 타지 않으면 보상을 해줄 수 없다는 손해사정인의 말에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심정"이라고 울먹였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