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인상 거부에 '수출 중단' 위협…유럽 각국 에너지 확보책 '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공급하는 천연가스 수출을 중단하면서, 우크라이나를 경유해 이를 공급받는 유럽에 새해 벽두부터 에너지난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러시아의 국영 가스회사인 '가즈프롬'은 1일 우크라이나가 가격을 4배가량 인상하는 새 제안을 거부한 이후 우크라이나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을 4분의 1(하루 1억2천㎥가량) 줄였다고 밝혔다.
'가즈프롬'은 가스 가격을 1천㎥당 현재의 50달러에서 230달러로 인상하려 했으나 우크라이나가 80달러 이상은 지불할 수 없다고 맞서자 이 같은 조치를 단행했다. 러시아가 가스 공급을 줄이면서 헝가리와 폴란드부터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헝가리의 가스 도매업체인 'MOL'은 우크라이나를 경유한 러시아산 가스 공급이 이날 25% 이상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헝가리 경제부는 가스 소비가 큰 거대 고객사들에게 에너지원을 석유 등으로 전환할 것을 권고하기 시작했다.
폴란드 가스회사인 PGNiG도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국경 지역에서 가스관 압력이 떨어졌다면서 자국내로 들어오는 가스량이 줄었다고 밝혔다.천연가스의 59%를 러시아로부터 수입하는 오스트리아는 우크라이나를 통한 러시아산 가스 공급이 이날 오후 5시부터 18% 감소했다고 석유회사인 OMV가 밝혔다.
서유럽 국가들은 가스 수요의 25%를 러시아로부터 수입하고 있으며, 독일은 이 비율이 30%에 달하는 등 우크라이나를 경유해 공급받는 러시아산 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이번 사태가 심화될 경우 유럽의 주요 가스 수입국들은 비축량을 줄이든지, 대체 에너지원을 모색해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금주 중 긴급 회의를 열어 현 상황을 진단하고 가스수급 계획을 점검하기로 했다. 안드리스 피에발그스 EU 에너지담당 집행위원이 주재하는 25개 회원국 에너지 관리들의 회의가 4일 소집될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세르게이 쿠프리야노프 가즈프롬 대변인은 보통 하루 3억6천㎥의 가스가 우크라이나를 통해 다른 나라들로 공급되고 있다면서 서유럽 가스 공급이 중단된다면 이는 우크라이나가 자국을 통해 공급되는 가스를 빼돌리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유럽 소비자들에게 가야 할 러시아 가스를 흡수하기 시작했다는 정보가 있다"면서 우크라이나가 무단으로 빼돌린 유럽행(行) 가스량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공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 가스를 일절 사용하지 않았다면서 이 같은 주장을 반박했다.우크라이나 국영 '나프토가즈'는 "일부 가스관에 전혀 가스가 흐르지 않고 있으며, 이로 인해 전체 가스관에서의 압력이 떨어지고 우크라이나와 유럽에 대한 가스공급에 한계가 올 수 있다"면서 "(러시아 측의) 조치는 유럽에 대한 가스 공급을 위태롭게 하는 만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역공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지난해 자국의 '오렌지 혁명'과 친(親)서방 성향의 빅토르 유셴코 대통령 선출에 대한 러시아의 보복 조치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그러나 유셴코 대통령이 이번 사태의 수습을 위한 가즈프롬과의 새로운 협상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제안하고 나섬으로써 돌파구가 열릴지 주목된다.
그는 1일 가즈프롬이 요구한 가격을 수용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면서도 "우크라이나는 시장가격을 준수할 준비가 돼 있으며, 양국이 협상에서 타협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절충의 여지를 남겼다.
독일과 프랑스는 이번 사태의 영향이 없을 것임을 낙관하면서도 사태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자비네 마스 독일 경제부 대변인은 "가스업계는 현 상황에 긴장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불안에 떨 이유가 없다"면서 독일 가스 저장고는 현재 거의 완전히 채워져 있고 최대 75일까지 국내 공급이 가능한 상태라고 밝혔다. 독일의 루르가스도 이번 사태가 기업 고객들에 대한 공급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자택소유자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프랑수아 루스 프랑스 산업장관은 "러시아의 (공급 보장) 약속과 더불어 가스공급원 다변화 정책으로 프랑스에 대한 공급에는 위험이 없다"고 말했다. 스위스 정부 대변인은 충분한 정보가 없다면서 이번 사태에 논평을 자제했다.
숀 매코맥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이번과 같은 갑작스러운 조치가 이 지역 에너지 분야에서 불안정을 초래하고,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기 위해 에너지를 이용한다는 심각한 의문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논평했다.
모스크바·키에프로이터AFP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