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새해는 경북이 '미래의 새 시대를 여는 10년'의 원년이 된다. 그 출발의 중심점에 중·저준위방사성 폐기물처분장(방폐장)의 경주 유치가 있고 한국수력원자력(주) 본사 이전과 양성자가속기 건설사업이 뒤따른다. 이들 3개사업에 따른 예상경제파급효과는 무려 23조 원. 3조4천여억 원인 올해 경북도의 총 예산보다 6배가 훨씬 넘는 천문학적인 액수다. 방폐장 유치가 침체된 지역경제를 되살릴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고 올해가 경북 발전의 새로운 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방폐장 경주 유치를 계기로 본지는 지난해 11월, 12일동안 일본, 영국, 핀란드, 스페인 등 해외 4개국의 유명 방폐장 입지를 찾아 안정성, 환경성, 지역발전성 등을 살펴봤다. 방폐장은 과연 안전한가? 또 지역발전의 밑거름이 될 수 있는가? 그 환경성과 경제성은 어느 정도 인가? 등을 미리 점검하기 위해서다.
찾아간 외국 방폐장의 경우, 우리나라처럼 정부가 나서 입지 지역에 거액의 특별지원금을 주는 곳은 없었지만 방폐장 관련산업이 발달하고 인구 유입과 함께 고용이 창출되는 등 도시가 활기찼다. 소비에서부터 고용창출, 인프라 확충 등 모든 분야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줘 도시를 몰라보게 바꿔놓고 지역민들에게 '희망의 불'이 되고 있을 정도였다.
◆핀란드 오킬리오토 방폐장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핀란드 헬싱키 공항까지는 비행기로 20여시간. 다시 승용차로 눈이 덮인 300km의 도로를 달린 끝에 도착한 곳은 핀란드 북서쪽의 자그마한 섬에 위치한 오킬루오토 방사성폐기물처분장이다. 중저준위 및 고준위처분장과 함께 원전시설이 들어서 있는 이곳은 두메산골이었다. 가는 내내 2차선 도로 양쪽으로 소나무와 자일리톨껌의 원료를 추출해낸다는 자작나무로 빼곡했다.
겨울이 길어 기상적으로나 지형적으로나 아무런 산업활동을 할 수 없는 곳이었지만 원전과 방폐장이 들어선 뒤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근무인원 2천500여 명 중 60%가 에우라요키라는 인접 도시에 살면서 소비와 주택시장을 주도하고 있었다. 방폐장으로부터 20km거리의 라우마는 방폐장이 들어서기전에는 1만여명 조금 넘었지만 지금은 3만 명에 이르고 있다. 또 비슷한 거리의 유라조키마을도 3천 명 이하의 인구가 방폐장 유치이후 6천 명을 웃돌고 있을 정도로 경제규모가 커졌다. 방폐장의 직원 채용은 공채를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같은 급여를 받고 이 골짜기까지 오려는 사람이 많지않다보니 자연스레 시설이 위치한 지역 출신들이 대거 채용되면서 해당 지역의 취업률이 높아져 취업걱정이 사라진 상태다.
이곳으로 이어지는 사통팔달의 도로(2~4차선)는 방폐장이 건설되기 1, 2년전에 만들어졌는 데 총연장이 100km에 이르고 있다.
◆일본 로카쇼무라
가장 가까운 나라, 일본의 로카쇼무라 방폐장(아오모리현 로카쇼촌)도 역시 유럽과 마찬가지로 농촌 오지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땅이 척박하고 겨울이 길어 되는 작물이라곤 마와 무 등 뿌리식물밖에 없는 곳이라면 경제적으로 얼마나 열악한 곳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방폐장이 들어서기 전에는 주민들의 이농현상이 심화, 해를 거듭할수록 인구가 줄어들었다. 하지만 1992년 방폐장이 가동되면서 주변 도시와 마을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광역단체인 아오모리현은 20년 전과 비교할 때 소득이 2배이상, 기초단체로 5km내에 있는 로카쇼촌은 3.5배이상 늘었다는 게 해당 지자체와 로카쇼무라 홍보관 측 얘기다.
10여 년간 방폐장 건설과정에서 공사인부 등이 지역민들로 채워지고 기술자들이 유입되면서 인구 감소세가 중단됐다. 식당과 숙박업소 등도 호황을 이뤘다.
1980년대까지 아오모리현 67개촌 중에서 가장 가난한 촌이었던 로카쇼무라는 1992년부터 재정자립도가 100%에 이르는 가장 부유한 촌으로 바뀌었다. 자체 소비가 이뤄지는 것도 큰 힘이지만 원전 및 방폐장 시설이 해당 지자체에 연간 130억 엔의 세금(재산세, 주민세 등)을 내 해당 지자체의 살림살이를 돕고 있기 때문이다.
방폐장 건설에 앞서 주변도로망이 완벽하게 구축됐는가 하면 온천시설, 도서관, 복지관 , 농산물판매시설 등 편의시설이 갖춰지면서 죽어가던 마을이 생동감 넘치는 중소도시로 탈바꿈 했다.
◆스페인 카브릴
스페인 코르도바 광역시에서 150km거리의 호르나추엘로시(기초) 구역내 산악지대에 위치한 카브릴 방폐장에는 산길만 40분간 달려 도착할 수 있었다. 국립공원 산맥속에 자리해 인근 주민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방폐장 운영사인 엔레사가 반경 10km 지역의 마을에 대한 지원금을 책정, 매년 6월쯤 지원금을 해당 지자체별로 나눠주며, 이는 지역발전이나 농산물유통, 상업활성화 등에 쓰여진다.
여기엔 방폐장만 있어 직원은 115명으로 단촐하다. 대다수가 40km거리내의 작은 도시에 살고 있으며, 50여 명에 이르는 경비 등 용역업체 직원 및 계약직은 대부분 해당 광역구역내에 거주하는 사람들로 채워져있다.
전체 지원금중 방폐장으로부터 40km거리에 있는 호르나추엘로시(5천 명)에 80%인 연간 60만 유로(7억 원)을 지원하고 인구 3천 명의 후엔테오베주나에 16, 17%, 1천 명 이하인 나스라바스와 알라니스에 각각 3, 4%를 지원하고 있다.
호르나추엘로에서 만난 레스토랑 주인 라파엘(27) 씨는 "방폐장을 찾는 차량과 손님들이 드나들면서 지역 특산물인 벌꿀과 올리브유 등이 잘팔리고 영업도 잘 되는 편"이라고 말했다.
◆영국 셀라필드
영국 맨체스터 공항에서 서북쪽 바닷가쪽으로 승용차로 5시간 거리에 있는 셀라필드와 6km거리의 드릭 마을은 원전과 방폐장의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었다. 주민과 원전시설 운영회사는 연간 4회 가량 공식적인 미팅을 가지고 지역의 공동발전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방폐장 위치 지역에 대한 직접 지원은 없지만 운영주체인 영국핵연료공사는 자선단체를 통해 지원하거나 지역의 병원이나 대학 등에 시설확충비나 연구비 등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주민의 복지생활을 돕고 있다.
셀라필드 원전의 경우 직원 1만 명 가운데 2천여 명의 계약직은 해당 지역주민들을 채용하고 있는 데 1956년 가동에 들어간 원전이 시한이 끝나 2003년부터 가동을 중단한 채 정리절차에 들어가자 주민들이 실직과 지역경제 파탄을 우려, 대책마련을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방폐장의 경우 연구직이나 전문엔지니어 등 고급인력은 공개채용 형태로 뽑았지만 경비·식당종업원 등 단순노무직은 모두 지역 주민을 우선고용하는 '주민우선 고용제'를 도입한 결과 주민들의 취업난은 자연스레 해결됐다. 방폐장 입지인 드릭마을을 끼고 있는 시스케일에는 방폐장이 들어오면서 연간 10만여 명의 방문객과 관련업체 관계자들이 잇따라 찾아들어 생기를 되찾았다. 4개 원전의 폐기물을 처리하는 이 방폐장에서는 시스케일에 연간 10만 파운드(2억 원)를 지원하고 일대 모든 마을에 연간 300만 파운드(60억 원)를 자선단체나 각종 행사 등 스폰서로 지원하고 있다. 황재성기자 jsgold@ms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