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모임에 가려는데 보일러에서 심상찮은 소음이 났다. 애프터 서비스센터로 연락하니 토요일 초저녁인데 벌써 업무 종료 메시지만 흘러나왔다. 설치 업체로 연락하니 기사가 병원에 입원 중이라고 했다. 동네 보일러 수리점은 수리할 수 없다고 했다. 마침 주차장에서 한 보일러업체가 판촉활동을 하기에 살았다 했더니 타업체 제품은 영역침범이 된다고 했다. 유난히 추웠던 그날 밤, 냉골서 하룻밤을 떨고 나니 풍찬노숙하는 이들의 심정을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옛말에 "복(福)은 쌍으로 안 오고 화(禍)는 홀로 안 온다" 했다. "두 번 일어났던 일은 세 번 일어날 수도 있다"고도 했고. 반갑잖은 일은 잇따라 일어나기 쉽다는 의미겠다. 사노라면 더러 공교로운 일들만 골라 일어나는 바람에 심사가 울울해질 때가 있는 법이다.
누구는 벼락 맞을 확률(50만 분의 1)보다도 훨씬 낮다는 로또복권 1등(814만 분의 1)에 두 차례나 당첨됐다는데, 누구는 안 팔리는 집을 헐값에 처분하고 나니 부동산 값이 치솟고, 이사 갈 집을 비싸게 사고나니 시세가 팍 내려가더라는 그런 일들이 숱하다.
가령 감기약을 먹고 몽롱한 채 운전하다 그만 앞차를 살짝 들이받고, 정신이 없는 판에 휴대전화는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이 깜깜하고, 집에 돌아오니 보일러마저 고장나 있다면'''. 일본의 저명한 정신과 의사 사이토 시게타 씨는 안 좋은 일이 거듭될 땐 "내참, 나처럼 운 없는 사람도 없을 거야"라며 가볍게 웃어넘겨 보라고 권한다.
황우석 교수의 올해 사이언스 논문의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가 결국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천기술 여부도 불투명하다. 사람들은 또다시 울적한 낯빛이다. 뉴스만 나오면 속이 상해 밥을 못먹을 지경이라고도 한다. 빛나던 이름 '황우석'은 이제 우리에게 씁쓸한 트라우마(trauma: 정신적 외상)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황 교수를 믿고 싶다는 한 시인이 글썽해진 눈으로 말한다. " 우리 국민 모두가 치료받아야 할 것 같지 않아요?"
세상이 이토록 어수선한데 을유년(乙酉年)은 홀로 묵묵히 제 갈 길을 가고 있다. 이 한 해의 온갖 복과 화, 기쁨과 슬픔들을 품어안은 채. 잘 가렴, 2005년이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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