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검사…'불륜 증거' 용도로 변질

입력 2005-12-28 10:59:53

아내의 불륜사실을 알게 된 서인수(39·가명) 씨. 그는 급기야 세 살난 아들의 진짜 아버지가 누구인지까지 의심이 들었다. 그는 인터넷에서 유전자 검사 업체를 찾아 친자 확인을 의뢰했다. 그는 "아내 동의없이 불과 이틀 만에 검사 결과를 알 수 있었다"고 했다.

희귀성 유전질환이나 범인 확인 등에 사용되던 유전자 검사가 배우자 불륜을 추적하는 용도로 변질되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 쉽게 유전자 검사를 받을 수 있게 되면서 친자확인을 하려는 사람들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업체에서는 유전자 검사를 부추기기도 한다.

◆내 아이 맞나요= 주부 최모(35) 씨. 그는 최근 의뢰한 유전자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자신의 혈액형이 A형, 남편이 O형인데 아이 혈액형은 B형인 것. 의학적으로 가능한 자녀 혈액형은 O형 혹은 A형. 가끔 다툴 때마다 아이 혈액형을 들먹이는 남편 때문에 고민하던 최씨는 "정확히 혈액형 검사를 받았는데도 남편의 의심이 그치질 않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사를 의뢰했다"고 말했다.

현재 보건복지부에 신고된 국내 유전자 검사기관은 모두 146곳. 지난 1월 6건이었던 유전자 검사기관 신고 건수는 4월 95건, 8월 129건 등으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의료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자녀가 친자인지 의심하는 경우 병원보다 대부분 벤처 검사업체에 의뢰하고 있다는 것. 병원에서는 당사자들이 모두 병원을 방문, 동의서를 써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하고 상대방 몰래 하는 검사가 불가능하기 때문.

유전자 검사 업체 관계자는 "사망자 신원확인이나 암진단 유전자 검사 등도 하지만 가장 많이 의뢰하는 건 역시 친자확인 검사"라고 말했다.

◆판치는 불·탈법= 검사업체가 늘어나면서 배우자 동의없이 몰래 유전자 검사를 하거나 심지어 임신 중인 태아의 유전자 검사까지 알선하는 등 위법 사례도 적잖다.

취재진이 "남편 몰래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있는지"를 묻자 업체 측은 "동의서를 임의로 적고 남편 칫솔이나 머리카락 모근, 담배꽁초 필터 등을 보내면 하루 만에 결과를 알 수 있다"고 했다.

업체 측은 "확실히 비밀이 보장된다"면서 "2천 건 넘는 유전자 검사를 했지만 상대 배우자에게 들킨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자신했다.

상대 배우자의 자발적인 동의를 받지 않고 유전자 검사를 하는 행위는 생명윤리법 위반이다.

◆우려되는 폐해= 친자 확인의 경우, 친자가 아닌 것으로 결과가 나오면 가족 관계의 붕괴는 피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또 본인뿐만 아니라 부계와 모계, 형제 등 가족의 질병력 등 유전 정보 일부가 노출될 수도 있다.

더욱이 유전사 검사 과정에서 시료가 오염돼 다른 결과가 나오더라도 이에 대한 제재방법도 없는 실정.

지역의 한 의사는 "유전자 검사 시 개인정보 보호조치나 유전정보를 이용한 교육·고용·승진·보험 등에서의 차별금지 조항 등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