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동에서-선거 논리에 휩쓸리면...

입력 2005-12-27 11: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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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있는 한 그렇게 못한다. 만성적인 누적 적자구조가 될 가능성이 많다."

이해찬 총리는 지난 1월 광주 지역인사들과의 간담회 중 호남고속철 조기착공 건의를 받자 이렇게 일축했다.

그러나 이달 초 당정협의에서는 입장을 바꿔 "연간 5천억 원의 추가 재원 대책만 마련된다면 가능하다. 야당의 감세 주장에 적극 대처해 달라"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당정협의 며칠 후 광주에서 열린 행사에서 "타당성이 없다는 결론이 났으나 호남의 미래를 보고 다시 한번 타당성 조사를 하라고 했다"고 말함으로써 이 총리의 손을 들어줬다.

불과 1년도 안돼 정부 방침을 뒤집게 된 동인(動因)은 뭘까? 여권에 정치적으로 비상이 걸리게 된 상황, 즉 국정원 불법도청 사건이 DJ 정권에 초점을 맞춰 당시의 핵심 인사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잇따르면서 호남지역 여론이 악화된 것과 무관치 않을 듯하다. 무엇보다 지방선거를 불과 6개월 앞두고 있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지난 10월 대구 동을 보선. '교두보 확보'와 '텃밭 사수'로 팽팽히 맞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최대 현안이었던 공공기관 이전 및 혁신도시 건설을 유치하겠다고 경쟁하듯 공약으로 제시했고, 결과적으로 현실화시켰다. 다른 시'도에서는 이 문제를 놓고 상당한 진통을 겪기도 했지만 대구에서는 동을 보선 덕택(?)에 큰 논란 없이 매듭짓게 된 셈이다. 선거에 앞서 지역구인 달성군으로부터 공공기관 유치 건의를 받았던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도 그저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두 가지 사례 모두 선거 논리가 정책의 향배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게다가 여'야 모두 내년 선거를 차기 대선의 전초전으로 간주, 총력전을 펼 움직임이어서 국회에서 각종 정책(사업)들을 심의하거나 당 차원에서 공약화하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검증보다는 선거논리에 더욱 집착할 것이란 우려를 갖지않을 수 없다. 선거의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들이 포진해 있는 지방의회에서는 선심성 사업들을 관철시키려는 움직임이 노골화될 수도 있다.

그리고 지방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정치권은 또다시 당의 명운이 걸린 대선 정국으로 빠져들게 된다. 각 당은 국회 활동을 통해 자신들의 지지층을 결집시키기 위한 정책 관철에 주력할 것이고, 여당의 경우 청와대와 정부의 지원 사격까지 받게 된다. 결국 선거일인 2007년 12월까지 정부 정책은 선거논리에 휩쓸리게 될 공산이 짙다. 사회 양극화 문제가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정책의 양극화도 초래되지 않을지 우려된다.

이 같은 우려가 모두 기우(杞憂)로 끝나기를 신년 소망에 담아 본다.

서봉대 정치2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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