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軍 '르완다 대학살' 방관 법의 심판 직면"

입력 2005-12-27 10:5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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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타임스, 군검찰 수사착수 보도

지난 1994년 르완다에서 자행된 후투족의 투치족 대학살 사건 당시 현장에 있던 프랑스 군대가 방관했다는 혐의로 프랑스 군 법정의 심판에 직면했다고 영국의 더 타임스가 26일 보도했다. 더 타임스는 이번 사건의 배후에는 고 프랑수와 미테랑 전 프랑스대통령도 관여되어 있으며 프랑스가 아프리가 대륙에 대한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려는 상황에서 프랑스 정부로서는 골칫거리라고 분석했다.

파랑스 국방부도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이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자크 바이예 군 검사가 대학살 현장에서 프랑스 군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수사에 착수했다고 더 타임스는 전했다.

지난 1994년 당시 주비날 아비아리마나 르완다 대통령의 사망에 이어 자행된 르완다 대학살로 약 80만 명이 사망했는데 이 같은 만행을 저지한다는 명목으로 파견된 2천500여 명의 프랑스 군인들이 저지하기는커녕 오히려 그 만행에 참여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특히 후투족에 의해 자행된 만행의 현장에서 살아남은 6명이 프랑스 군대가 만행에 가담했다며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문제는 공식화됐다. 바이예 검사는 소송을 제기한 6명 중에서 4명은 개인적으로 피해를 보지 않았다고 기각한 후 나머지 2명이 제기한 소장을 검토하고 있다.

미셸 알리오-마리 프랑스 국방장관은 터무니없는 소송이라고 반발하고 있으나 바이예 검사는 이에 굴하지 않고 두 사람의 주장이 충분히 믿을 만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프랑스 군대가 현장에 있으면서도 수수방관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프랑스의 아프리카에 대한 야심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는 지적이 분분하다. 미테랑 당시 대통령은 아프리카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는데 프랑스는 특히 아비아리마나 르완다 대통령의 권력의 근간이 되는 군대를 무장시키고 훈련시켜 주는 등 두둔함으로써 영향력 유지를 꾀했다.

아비아리마나 대통령이 사망하자 미테랑 대통령은 평화유지를 명목으로 병력을 파견했는데 프랑스군은 먼저 살상을 중단시키지 못하고 버퍼존을 만듦으로써 학살자들이 도주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고 피해자 측인 투치족은 주장하고 있다.

이 문제는 지난 1998년 프랑스 의회에서 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진상을 조사하려 했으나 증거의 대부분이 국가기밀이라는 이유로 진실을 규명하지 못한 채 좌절되고 말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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