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디지털 농군"…'세화농산' 운영 구재현씨

입력 2005-12-26 09:28:26

구재현(28) 씨는 '눈씻고 봐도 찾기 힘든' 20대 농사꾼이다. "놀면 놀았지, 제조업체 생산직도 싫어하는 세상인데 왜 농사를 짓나?"라고 물었더니 "그런 생각 한 번도 한 적 없는데…"라며 웃는다.

공업고교 전자계산기과를 나온 이력을 보고 "농사와 관련 없는 전공인데"라고 했더니, 이번엔 '명답'을 내놨다. "제가 기계나 컴퓨터 쪽을 좀 알거든요. 농사에 과학을 접목시키고 싶었습니다." 그는 디지털 농업인을 아느냐고 되물었다.

◆디지털 농업인

구씨는 장미를 재배한다. 대구 달성군 다사읍 세천리 '세화농산' 1천 200여 평이 그의 일터다.고교를 졸업한 직후인 1998년, 아버지를 도와 농사에 뛰어들었다. 아버지가 권한 것이 아니라 구씨 자신이 원해서였다.아버지는 장미를 '옛날 식'으로 키우고 있었다. 비닐하우스를 세우고 맨 땅에다 심어 길렀다.

"논농사로 말하면 조선시대 농사법이었죠. 1천 200평 땅에 농사를 지어야하는 데 땅에다 직접 심을 경우, 비료며 물을 주는 일을 일일이 사람 손을 써야 합니다. 이래선 안되겠다 싶더라고요."그는 달성군 농업기술센터 힘을 빌어 농사에 디지털을 심었다. '양액 재배'를 시작한 것.

"쉽게 설명하면 거치대를 설치, 그 위에 장미를 키우는 것이 양액 재배예요. 이렇게 하면 비료나 물을 주는 일을 자동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됩니다. 중앙제어 장치를 설치, 데이터 값을 입력해 놓으면 자동적으로 일정시간이 되면 비료나 물이 들어가게 되죠."

일손 부담을 더는 것은 물론, 장미 품질도 크게 좋아졌다. 들쭉날쭉 농사에서 탈피하니 꽃의 크기가 커지고 색깔이 좋아졌다. 장미가 튼튼해진 것은 물론이었고 더 빨리 자랐다. 소득이 20%나 늘었다.

"요즘 농사가 갈수록 어려워지더라고요. 과학 영농이니 하면서 많이 배워야 한다는 데 이 나이에 우리는 어려워요. 아들 녀석이 오고 나니 모든 것이 척척이예요. 나는 비료 포대에 쓰인 영어도 잘 모르는 형편이니까…." 아버지 본춘(59) 씨는 대견해 했다.

◆농사가 좋아요

구씨 농장은 연간 1억여 원의 매출을 올린다. 지금은 뜸하지만 일본 수출도 했다. 요즘엔 연료가격이 너무 올라 채산성이 많이 떨어졌으나 그리 나쁜 편은 아니라고 구씨는 말했다.농사가 좋다는 구씨는 올해 농촌진흥청장상을 받았다. 배우고 익히는 농업을 심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4H운동(미국에서 유래한 농촌청소년 계몽운동) 달성군 연합회장이다. 농사를 짓고 있다고, 농촌에서 자란다는 이유로 주눅들 필요 없으며 스스로 깨어나자는 것이 그의 신조다. 그래서 이 운동을 통해 후배들을 다독인다.

"농사 짓는 것요? 사실 힘이 듭니다. 예측할 수 없는 가변성이 많은 탓이죠. 장미의 경우, 계절이 바뀔 때마다 아무리 예방조치를 하려고 노력해도 자꾸만 병이 듭니다. 속이 상하지만 최대한 변수를 줄이려고 노력합니다. 다양한 가능성을 설정, 과학적으로 그 가능성을 줄여가려고 하죠. 자꾸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옵니다."

그는 젊은 사람들이 농사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미만 해도 나이 든 사람들은 어떤 것이 더 산뜻하고 아름다운 지 선별할 능력이 없다는 것. 노력만 하면 소득이 큰데도, 단지 농사라는 이유로 '평가절하'되는 것을 그는 참을 수 없다고 했다.

◆1등 농업인이 꿈

구씨는 사귀는 사람이 있다. 대구에서 직장을 다닌다."농사짓는 것요? 그 친구, 농사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특히 꽃을 사랑하니까 제가 농사짓는 것을 싫어할 이유가 없죠. 농사든 어떤 직업이든, 열정을 갖고 일하면 사람의 가치는 올라갑니다."

그는 농사가 그리 힘든 것만은 아니라고 했다. 과학 영농을 도입하면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 많이 줄어든다는 것.

"꽃농사는 햇빛을 따라 일합니다. 해가 뜨면 일이 시작되고 해가 지면 일이 끝나죠. 양액재배를 하면 전자동으로 이뤄지는 일들이 많아 손이 그리 많이 가지는 않습니다."

구씨는 요즘 중국산 저가 장미가 들어오는데다, 네덜란드 등 원예 선진국의 꽃수준이 갈수록 좋아져 정신을 바짝 차려야한다고 말했다."농사를 잘 지어서 이 분야에서 1등이 되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과학화된 영농이 필수적이라 틈만 나면 기술습득을 하러 다닙니다." 20대 청년은 농사가 너무 즐겁다고 했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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