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네오-溫故知新'

입력 2005-12-24 10:37:29

과거로 돌아가는 유행을 '레트로(retro)'라 한다. '회고'라는 뜻의 영어 레트로스펙트(retrospect)의 접두어가 '거꾸로'라는 의미를 지닌 데서 따온 말이다. 그렇다면, 변화무쌍한 이 시대에 왜 이 말이 회자되고, 이런 현상이 바람을 일으키게 될까. 복고 바람은 어느 시대에나 있어 오긴 했다. 하지만 생존 경쟁이 치열해지고 사회가 각박하고 삭막해질수록 '인간적'이었던 과거를 더욱 그리워하는 경향 때문일는지 모른다.

○…사실 디지털 시대는 마치 동전의 앞뒤처럼 편리함과 스트레스를 함께 거느린다. 그러나 스트레스 쪽이 강조돼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거꾸로 가려는 바람이 일고, '어제 산 새 물건도 내일이면 헌것이 되는' 소용돌이 속에서도 옛것을 익혀 새 것을 창조하는 '네오-온고지신(溫故知新)' 경향이 나타나는 게 아닐까. 더구나 요즘 세상이 너무 어지럽게 돌아가므로 더 그런 건 아닐는지….

○…최근 옛 성현들이 소요하던 산책로를 정비, 그들의 호나 이름을 딴 새 이름으로 불리며 사랑받고 있다고 한다. 조선조의 학자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을 기리는 경북 안동의 '퇴계 오솔길', 영덕군 영해의 고려 말 학자 목은 이색(牧隱 李穡, 1328~1396)을 떠올리는 '목은 이색 산책로'가 그 예다. 또 구미시 인동의 조선조 학자 여헌 장현광(旅軒 張顯光, 1554~1637)의 호를 딴 '여헌로'도 마찬가지다.

○…지난 10일 단장이 끝난 '퇴계 오솔길'은 도산 종택에서 후손인 시인 이육사(李陸史) 생가→단사 협곡→청량산 간의 3㎞다. 퇴계가 소요하면서 '그림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라 극찬했던 것으로 전한다. 영해면 괴시리 3.4㎞의 '목은 이색 산책로'는 지난 7월에, 여헌의 종택 부근의 '여헌로'(650m)는 이미 2000년에 만들어져 사랑받고 있다.

○…이 길들을 찾고 밟는 사람들은 옛 성현들을 그리워하기 때문임은 두말할 나위 없지만, '왜 그리운가'라는 대목을 짚어봐야 한다. '온고지신'의 핵심은 '온고'의 과정에 있다. 새것을 끝없이 배워 나가기보다는 내게 이미 있는 것을 되돌아보고 다시 생각해 보는 일이 중요하다. 배우고 경험한 것을 온축시켜 성찰함으로써 앎의 정도가 더욱 깊고 새로워지는 게 얼마나 바람직한가. 문득, 그 오솔길들을 거닐고 싶어진다.

이태수 논설주간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