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회 마저 진흙탕…" 정치권·시민단체 강력 반발

입력 2005-12-24 10:40:26

경북도의회와 대구시의회가 23, 24일 연이어 '기초의원 선거구 수정 조례안'을 기습 처리하자 정치권은 물론 시·도민들은 "주민이 뽑은 지방의회가 민의를 내팽겨쳤다"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이번 기습적인 안건 처리는 한나라당 소속 시·도의원들이 '짜고 치듯'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대구시의회의 경우 당초 26일로 예정된 본회의 일정을 이틀이나 앞당겨 기습 처리를 감행했다.

시의회 의장단은 23일 밤 9시부터 10시 사이 전체 시의원 27명 가운데 한나라당 소속 23명에게 본회의 일정을 미리 통보하고, 24일 새벽 5시까지 시의회 뒤편 계단을 통해 본회의장 뒷문으로 잠행할 것을 알렸다.

반면 열린우리당과 무소속 시의원 4명에게는 이 같은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24일 새벽 5시45분쯤 시의회 사무처 직원들이 문자메시지 및 전화를 통해 통보하는 바람에 이들 의원들은 모두 참석하지 못했다.

시의회는 또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당원들이 시의회 의장실과 의원 휴게실을 점거하고 있는 것을 감안해 본회의장 조명도 켜지 않고, 대신 손전등 10여개만 켠 채 5분 만에 '기초의원 선거구'와 '추경예산안'을 전격 처리했다.

이번 '기초의원 선거구' 관련 조례안의 핵심은 4인 선거구의 도입 여부다.

한나라당 소속 시의원들은 한 선거구에서 기초의원 4명을 뽑는 '4인 선거구' 11곳을 '2인 선거구' 22곳으로 쪼갠 수정안을 통과시켰다.

경북도 4인 선거구 18개 중 수성이 가능하다고 자체 판단된 4개 선거구만 남겨두고 14개는 2인 선거구로 분할했다.

이는 한나라당이 4인 선거구의 경우 비(非) 한나라당 또는 무소속 기초의원의 진입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이를 원천적으로 막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그러나 당초 4인 선거구는 학계, 법조계 등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거구획정위원회가 특정 정당 일색인 지역에서 '다양한 정치세력의 일부 진출'을 허용함으로써 풀뿌리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겠다는 뜻으로 마련한 것.

특히 대구의 경우 선거구획정위 위원들 가운데 2명은 대구시의회가 추천한 인사로, 이들도 이 뜻에 공감하고 '4인 선거구'에 동의했다.

이를 두고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 민주당 등 비 한나라당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한나라당이 기초의원 '싹쓸이'를 위해 시·도민들을 무시한 '안하무인격' 행동을 보였다"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또 민주적인 절차가 생명인 의회에서 이를 누구보다 더 지켜야할 시·도의원들이 날치기라는 무리수를 둬 법적 대응 등 파장이 커지고 있다.

시·도의회는 의사진행 장소 및 시간 변경 통보를 전혀하지 않은데다 자당 소속이 아닌 시·도의원의 경우 소위 '왕따'까지 시키면서 획정안을 졸속처리했다는 비난까지 사고 있다.

시·도민들은 "국회의원들의 연례행사가 된 날치기 통과도 지긋지긋한데 광역의원들마저 '못된 버릇'을 답습하고 있다"며 "국회도 모자라 지방의회까지 진흙탕으로 운영해야 하나"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윤종화 대구참여연대 사무처장은 "선거구 기습.날치기는 지방자치법을 훼손한 것으로 원천 무효다"며 "날치기한 시·도의회는 시·도민들에게 사과하고 모두 사퇴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성호 시의원(무소속)도 "한나라당 시의원들이 이성을 잃은 것 같다"며 "시의회 역사상 가장 치욕스런 일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경북도당 정판규 사무처장은 "법적 대응은 물론 도의원들의 작태를 도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낙선운동도 벌이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경북도당은 23일 성명에서 "기초의원 선거구 획정안은 당리당략을 따지지 않고 선거구 획정 기준의 큰 원칙과 명문에 따라 선거구를 조정했다"고 밝혔다.

이종규기자 jongku@msnet.co.kr 김병구기자 kbg@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