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어떤 삶들...

입력 2005-12-23 11:50:16

벌써 한 해의 마지막입니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대부분 여러 감회에 젖기 마련입니다. 잘된 일에 대한 새삼스런 기쁨과 못된 일에 대한 아쉬움, 이런 것들일 테지만 지나간 삶의 경험으로 비춰보면 내년 말에도 이러한 감회가 반복될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신문 만드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다 보니 한 해가 지나가면 여러 가지 사건들이 떠오르게 됩니다. 올해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 어김없이 '다사다난'한 한 해가 되고 있지만 지역에서도 좋은 일들과 일어나서는 안 될, 그래서 꼭 기억해야할 일들이 많았습니다.

최근 일어난 두 개의 사건은 너무나 굵직한 뉴스가 많고 IMF이후 자주 일어났던 일이어서 뉴스로서는 가치가 떨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얽힌 삶을 생각해 보면 우리 주변의 이웃에서 일어난, 꼭 잊지 말아야할 사건입니다.

지난 19일 밤 고령군과 달성군의 경계에 있는 낙동강 다리 위에서는 10세, 9세 난 남매와 함께 투신하려 했던 김모(37'여) 씨가 경찰의 제지로 무산된 사건이 있었습니다(20일자 4면 보도). 생활고를 못이겨 투신하려다 마침 지나던 트럭 기사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제지했다고 합니다. 뒷이야기를 들어보니 당시 9세 아들은 무릎을 꿇고 있었고 큰딸아이는 다리 밑으로 떨어뜨리려는 엄마를 붙잡고 버둥거리며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다고 합니다. 여느 때보다 몹시 추웠고 강바람까지 몰아쳤던 한밤의 다리 위에서 말입니다.

지난 17일 밤 성주군 월항면에서는 마을회관에 불이나 11세, 10세 난 형제가 목숨을 잃었습니다(19일자 5면 보도). 이 형제는 부모, 막내동생과 함께 버려진 이 마을회관에서 5년이나 살았습니다. 석공이던 아버지 도모 씨가 외출한 사이 장애가 있던 어머니와 3형제는 잠이 들었다가 불이 나 어머니와 막내(8)만 나오고 두 형제는 죽고 말았습니다.

이들 두 집이 겪은 참담함의 공통점은 '원수와도 같은 가난'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렇게나 산 대가로 짊어진 가난은 아닙니다. 비정한 어머니라고 매도됐을 김씨의 경우는 남매를 데리고 어떻게라도 살아보려고 안해 본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온갖 일을 하면서도 검정고시를 통해 대학에 입학할 정도로 억척이었지만 가난의 굴레를 벗기는 불가능했던 모양입니다. 도모 씨도 마찬가지로 일감이 없자 생활비라도 줄이기 위해 전세를 빼내 빈 마을회관에서 생활해 왔습니다. 그나마 도씨의 경우는 사고가 난 뒤 성주군이 임시로 새 마을회관에 거처를 마련해주고 이웃 주민들과 학교, 면사무소 등 기관들이 나서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합니다. 참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들 두 사건은 조금은 들떠있는 연말연시의 분위기 속에서 금세 잊힐 것입니다. 또 이런 일을 숱하게 봐서 무덤덤한 데다 , 무엇보다 나와는 상관없는 어떤 곳에서 일어난 두 가족의 거친 삶이야기일뿐이기 때문입니다. 또 잠깐만 둘러봐도 많은 이들이 이와 비슷한 어려움 속에서 몸부림 치고 있기 때문에 새삼스러운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의 존재가 말살되는 이 참혹함은 개인문제나 사회구조적 문제 같은 논리의 잣대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살고 죽는, 특히 어린 아이들의 삶이 송두리째 파괴되는 절망 앞에 어떤 논리가 설 자리가 있겠습니까?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나 가난은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수렁에 빠져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만큼은 그 지긋지긋함에서도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을 갖도록 손을 내밀어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그 아이가 자라 자신이 힘들 때 누군가가 잡아줬던 손을 기억하고 자신의 손을 내밀어 다른 이에게 그 따뜻함을 전해주면 좋겠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소용이 없다'는 말이 어찌 꼭 성경에만 씌어있는 아름다운 말이겠습니까?

정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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