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탄생 - 음악과 그림전' 수집광 이상영씨

입력 2005-12-23 09:24:05

"어휴, 제가 뭘요. 재킷 그림이랑 작품명 대조해 설치한다고 큐레이터가 더 고생했는데요."

26일까지 크리스마스 기획으로 대백프라자갤러리에서 열리는 '예수의 탄생 - 음악과 그림전' 때문에 대구를 찾은 이상영(53) 씨는 전시회의 공을 갤러리 쪽으로 돌렸다. 그러나 좋은 흙이 없이 어떻게 명품 도자기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이씨가 유럽 20개국을 오가며 평생을 바쳐 모은 4천여 장의 LP 레코드판을 내놓지 않았다면 애시당초 열리지도 않았을 전시회였다. 이번에 선보인 희귀 LP판 재킷은 겨우(?) 100여 점에 불과하다. "더 많이 보여주고 싶었지만 운송에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 이씨의 말이다.

이씨는 수집광이다. 그 시작은 헤르만 헤세 때문이었다. 헤세를 좋아해 그의 서적과 미술 작품, 친필 편지 등을 모으기 시작한 것이 벌써 25년이 돼간다. (이씨는 지난 3월 대구문화예술회관에서 그가 모은 헤세 관련 물품 약 250여 점을 전시하기도 했다.) 이번에 전시한 LP판을 모으게 된 것도 그렇다. 헤세의 육성이 담긴 LP판과 그의 시로 만든 음악 앨범을 사 모으면서도 음악 쪽으로 수집을 하게 됐다.

예수 탄생이나 피노키오 등의 갖가지 주제와 관련된 음반을 찾아 유럽 곳곳을 돌아다니며, 때로는 벼룩시장을 뒤져가며 한장 두장 사 모은 것이 어느새 4천 점 넘게 소장하게 됐다. 그 규모만큼이나 희귀하고 가치있는 '작품'들이다. 피카소 그림이 담긴 재킷 34종류 36점, 전 세계 20여 점 가운데 현재 3장만 보존돼 있다는 피졸리제단의 '수태고지'가 담긴 재킷이 2점, 엘 그레코가 그린 '마리아의 대관식'이 담긴 LP판 3점 등 수집가들이 들으면 누구나 탐낼 만한 LP판들이 이씨의 소장 목록의 일부다.

이씨는 이런 작품들을 대구에 기증하겠다고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신이 수집한 온갖 진기하고 희귀한 소장품들로 대구에 박물관을 짓겠다는 계획을 세워 지금 추진 중에 있다. 3천500여 점의 헤세 관련 물품을 모아 '헤세기념관', 쉴리 프뤼돔부터 해롤드 핀터까지 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들의 초판본 등 4천여 점으로는 '노벨문학상 문학관', 900점이 넘는 피카소의 서적 등은 '피카소박물관', 예술가들의 각종 서신 등을 모아 '예술가 서간박물관', 피노키오와 관련된 물품들은 '피노키오미술관' 등 주제별 전시 공간을 만든다는 것이 이씨의 안(案)들이다.

이씨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수집품의 경우 올해 수상작가인 해롤드 핀터가 입원하기 전에 만나 직접 서명을 받은 일화도 들려줬다. '피노키오 마을' 이탈리아 콜로디와 직접 교류하기로 얘기가 돼있다는 것도 말해주었다.

왜 하필 대구일까? "대구의 문화적 기반이 가장 탄탄하다"는 것이 이씨의 설명이다. 이씨는 지난 3월 열린 '헤르만 헤세 대구특별전'에서 대구시민들이 보여준 폭발적인 반응을 보고 이런 생각을 굳혔다. 그제껏 테마별 박물관을 지을 도시를 고민하고 있던 차에 결정을 하게 됐던 것이다. 어릴 때 대구에서 살았던 기억이나 아내의 고향이라는 점은 다음 문제였다.

이씨의 제안에 대구시도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이씨는 "행정지원만 뒷받침해 준다면 언제라도 박물관을 짓고 싶다"고 밝혔다. "주제별 박물관이 완성되면 가까운 경주와 안동의 삼각지역을 대구·경북 관광의 중심지로 만들 수도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와 별도로 이씨는 내년 5월 '피카소/백남준' 전시회를 잡아놨다. 피카소의 대작은 아니지만 피카소가 지은 책, 피카소 전시회 포스터 같은 희귀물품 400여 점 가운데 200여 점을 백남준 씨와 관련된 소장품들과 함께 공개할 생각이다.

'일련의 계획들에 대해 시민들에게 부탁할 것이 있는지' 묻자 이씨는 "지금껏 관심 가져준 것만 해도 감사하다"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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