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미의 영화속 정신의학-박하사탕

입력 2005-12-22 15:2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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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은 정신적 붕괴가 원인

영화 '박하사탕'은 1980년대를 살았던 한 남자의 인생이 서울 한강의 성수대교가 무너져 내리듯 붕괴되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 영호가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절규하며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지는 장면은 새로운 삶으로의 회귀를 소망하는 처절한 몸부림으로 동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요즘 우리 사회는 경제적 파탄이나 가치관의 혼란 등으로 사회 적응을 하지 못해 발생하는 소위 무통제적 자살이 위험 수위를 넘고 있다. 검찰 수사를 받던 고위 공직자가 자살을 하고 심사평가원의 실사를 받던 한 의사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름다웠던 농촌 공동체가 붕괴되고 시인은 더 이상 시를 쓸 수 없는 시대다.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는 자아가 취약한 사람에게 정신병리를 야기할 수 있다.

주인공 영호는 순하고 소박한 꿈을 안고 사는 청년이었다. 그는 하루에 박하사탕을 1000개씩 싸는 일을 하는 순임을 사랑하게 되고 그녀가 무심히 건네준 박하사탕에 행복감을 느낀다.

그러나 군에 입대하면서 영호의 인생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처세술에 어눌하고 겁이 많았던 군인 영호는 광주사태에 투입된다. 거기서 발에 총을 맞고 두려움에서 떨던 영호는 오발 사고로 한 여학생을 죽인다. 여학생을 죽인 것은 결국 자신의 두려움 때문이었다. 나약한 자신에 대한 분노와 죄책감은 평생 그를 괴롭히며 그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

그는 두려움에 맞서기 위해 자기 성격에 어울리지 않는 경찰이 된다. 군대에서 가학적 상처를 입은 그는 자신이 겪은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자기를 학대했던 사람들의 행동을 닮아간다. 과격하게 데모 진압을 하고 겁에 질려있는 대학생을 잔인하게 고문한다. 그는 자신의 분신과 같았던 순임을 일부러 떠나 보낸다. 변질되어 버린 자신에 대해 자학적 행위를 한 것이다.

영호는 군인, 경찰, 사업가로 변해가는 20년 세월 동안, 젊은 시절의 꿈, 야망, 사랑 등 모든 것을 잃었다. 마흔 살의 영호에게 남은 것은 자신을 망친 증권회사 직원, 사채업자, 배신한 친구, 이혼한 부인에 대한 분노뿐이었다. 영호는 자신의 실패를 세상 탓으로 돌린다. 이처럼 자신의 공격성과 충동이 타인의 탓이라며 전가하는 것을 '투사'라고 한다. 이것은 가장 미숙한 방어기전 중의 하나다. 무기력하고 약한 자신에게 화가 날수록 영호는 자학적이며 자기 모멸적인 행동을 하게 되고 끝내 자살을 하고 만다.

톨스토이는 "자살이란 한창 힘을 낼 젊은이가 이 세상에서 참된 행복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고 여길 때 정신적으로 위축되어 육체적 생명의 조건을 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갑작스럽게 감당하기 힘든 상태에 놓이면 정신적 붕괴(psychic breakdown)가 일어나고 이 괴로운 내적 모순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의도에서 생명의 매듭을 잘라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앤드루스는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를 통해 사람들은 엄청난 위기를 당하면 "왜 하필 나인가"라며 현재의 상황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지만 성공과 실패의 길을 결정하는 것은 자신의 생각에 달려있다며 개인적 결단을 강조했다.

만족스런 삶을 살기 위해서는 개인의 노력뿐 아니라 사회적 요인 또한 매우 중요하다. 최근 배아줄기세포 진위 논란 등 진실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사회적 분위기가 어떤 정신적 혼란을 초래할지 불안하기만 하다. 뽀얗고 알싸한 한 알의 박하사탕 같은 양심이 몹시 그리운 시절이다.

마음과마음정신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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