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광장-느끼고 생각하며 터득하는 삶

입력 2005-12-19 11:38:14

나 자신의 삶에서나 가르치는 일에서 요즈음 더욱 분명해지는 것은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며 터득하는 삶의 중요성이며 그 가치에 관한 것이다.

사실 외적인 하루의 일과는 과거보다 지금이 훨씬 자유롭지 못하고 반복적인 일상이 되풀이 된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감정과 의식이 그런 일상 속에 매몰되지 않고 보다 더 자유롭게 깨어 있음을 느낀다.

과거엔 유명한 사상가나 작가의 책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던 특별한 것들을 요즈음은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이나, 목욕탕에서 물장난을 하는 어린 아이에게서도 배운다. 과거엔 유명한 사람, 학식 높은 사람에게만 주로 배울 것을 찾았다. 그래서 틈만 나면 유명한 작가의 시 한 수, 위대한 인물의 글 한 구절을 더 읽었다. 그러나 지금은 누가 나에게 '당신에게 가장 큰 스승이 누구냐'고 물으면 나는 서슴지 않고 언제나 있는 그대로 위대한 자연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래서 잠시의 시간이라도 주어지면 가까운 바닷가나 산 쪽으로 가 파도 소리를 들으며 수평선을 보거나 산자락을 오른다. 형편상 그것도 어려우면 텅 빈 공간으로 나와 바람을 쐬며 온몸으로 햇살을 받는다. 그러면 마음 속의 어두운 부분이 사라지고 영혼이 자유롭게 고양되는 것을 느낀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부딪쳤을 땐 더욱 그러하다. 처음엔 엉클어진 문제의 매듭을 풀려고 바다를 찾지만 오랜 시간 수평선과 대면하고 있으면 놀랍게도 풀어야 할 문제 자체가 사라지고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가르치는 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교직에 몸담고 있는 세월의 깊이만큼, 학생들 스스로가 자신의 삶의 주체가 되어 생각하고 체득한 경험이 그들을 보다 성숙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더욱 확신한다. 그래서 과거엔 가능한 한 많은 양의 지식을 내가 그들에게 모두 입력해줘야 한다고 안달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학생들이 스스로 터득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작고 사소한 것일지라도 그들이 느끼고 생각하며 깨달은 바를 존중하며, 어떤 형태로든 그것을 표출할 수 있도록 돕고자 노력한다. 진정한 배움은 거기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번 학기엔 학생들에게 자신이 경험한 다양한 체험 중 자신의 생각과 삶의 태도를 크게 바꾼 것에 대해 구술과 논술 형태로 발표할 기회를 주었다. 학생들은 저마다 살아오면서 가슴으로 터득한 자신을 키우는 나름의 방법과 경험을 솔직하고 진지하게, 때론 열띤 논조로 드러내었다. 어떤 학생은 초등학교 시절 자기 폐쇄성이 너무 강해 특수학교를 보내야 한다고 주위에서 우려할 할 정도였는데, 음악 듣기를 좋아하고 피아노 연주를 하게 되면서 그렇게 아름다운 세상이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고 했다. 그 후 그 느낌은 차츰 주변 사람들과 생활에도 옮겨져, 불안하고 부자연스러웠던 학교생활에서도 활기를 찾았다고 했다. 고등학생이 된 지금 그는 학교에서 음악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으며 누구보다 친구에 대한 의리가 있고, 많은 친구들 또한 그를 아낀다. 또 한 여학생은 '가시고기'라는 작품을 보고 늘 불만스럽게만 느꼈던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 과정을 이야기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발표가 끝날 즈음엔 더욱 슬프게 우는 그 아이에게 다가가 어깨를 감싸 안아 주었다. 그러자 반 친구들이 모두 박수로 그를 격려하여 주었다.

학생들은 자신에게 아주 절절한 경험을 이야기할 때나, 그런 친구들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공감할 때는 그 어떤 상황에서보다 더 순수하고 진지해진다. 그래서 여학생들 중에는 얘기 도중 자신이 눈물을 흘리거나, 그 얘기를 듣던 친구가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번 학기, 이 특별한 수업에서 난 지금까지 교육 현장에서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가슴 찡한 경험을 하였다. 어느 한 반에서 그날 발표한 대부분의 학생들이 눈물을 흘린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한 여자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 살고 싶다', '나에게 닥칠 앞날이 괴물처럼 두렵게 느껴지더라도 자신감을 잃지 않겠다' 등등 어찌 보면 그렇게 특별한 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것이 자신의 깨달음에 의한 것이기에 그렇게 순수하고 절실했을 것이다.

나는 이 수업을 통해서 어느 위대한 작가의 작품보다 더한 감동을 느꼈다.

이순희 동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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