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 굽는 할머니 '아름다운 친구사랑'

입력 2005-12-17 10:29:52

붕어빵장수 김옥선(72) 할머니. 오전 11시가 되면 대구시 중구청 앞 동네 한 모퉁이에 어김없이 나타나 붕어빵을 구워낸다. 몇 년째 변함없는 모습. 하지만 해질 무렵이면 마음이 바빠진다. 서둘러 장사를 끝내고 붕어빵 한 봉지를 품안 깊숙이 넣은 채 종종걸음을 걷는다.

김 할머니가 서둘러 가는 곳은 동갑내기인 육종임(72) 할머니집. 붕어빵 김 할머니가 친구라고 부르는 육 할머니는 지난해 8월 대장암 수술을 받았다. 병원에서는 6개월밖에 살 수 없다고 했는데 1년을 넘겼다. 때문에 오전 7시와 오후 7시 하루 두 번씩 1년 365일 반복된 발걸음이지만 김 할머니의 걱정은 여간 아니다. 육 할머니는 가족도, 친지도 없다. 자식은 원래 없는 데다 5년 전 남편마저 간암으로 숨진 것.

육 할머니는 구청 소유의 땅에 판잣집 같은 가옥에서 어렵게 겨울을 나고 있다. 추위도 문제지만 옆구리 쪽으로 달아둔 배변주머니를 매일 갈아야 하는 것이 제일 큰 일. 새 주머니로 교환하는 데만 1, 2시간씩 걸린다. 간호사의 도움없이 거울을 보고 직접 하다 보니 이젠 이력이 날 정도. 하지만 일회용을 여러차례 씻어서 쓰다 보니 그 부위에는 염증이 생겼다.

그래도 매일 아침, 저녁으로 찾아오는 반가운 친구가 있으니 덜 외롭다. 붕어빵 할머니가 오전 7시면 찾아와 안부를 묻고 장사가 끝나면 남은 붕어빵을 싸서 가져온다. 육 할머니에게 김 할머니는 말동무이자 간호사이자 친구이며 전부이다. 하지만 단둘이 앉아 다정하게 이야기할 시간조차 없다. 친구의 입에 붕어빵을 물려준 김 할머니는 빨래며 집안 청소며 허드렛일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우야든지 살아야죠. 이리 불쌍한 사람이 어디 있능교?" 붕어빵 김 할머니는 그래도 이정도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며 친구부터 걱정했다. 붕어빵 할머니 역시 혼자의 몸. 그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홀로서기를 해왔다. 인생에 '사랑'은 없었고 '우정'만 있었다는 김 할머니. 결혼은 꿈조차 꾸지 않았다.

'0999443'. 아직도 군번을 기억하는 그는 자유당 시절 여군으로 들어가 군생활을 마치고 제대 후에는 강원도 속초에서 오징어잡이 배를 탈 정도로 파란만장한 생을 살아왔다. 그나마 다행인 건 김 할머니는 올 여름 백내장 수술을 한 것을 제외하면 아팠던 기억이 없다.

그런 김 할머니가 육 할머니의 도우미로 나선 것은 지난해부터다. 10년 전부터 알던 육 할머니가 대장암 수술을 받은 이후 너무 힘들게 하루하루를 꾸려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 동갑내기 친구의 아픔을 지켜보는 것은 그에게도 고통의 연속이었다.

당시 육 할머니는 아픈 몸을 이끌고 생계를 꾸리기 위해 빈 박스를 주우러 다녔으며 병원에 가는 것조차 힘겨울 정도였다. 누구보다 혼자 사는 서러움을 잘 아는 그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육 할머니부터 찾았다.

그는 친구를 위해 인근 슈퍼, 과일집 등에서 박스를 모아 대신 팔아주기도 하며 병원, 보건소 등에 가서 필요한 약품을 받아주기도 한다. 자신 역시 국민기초생활수급대상자 1급이기 때문에 매월 20만 원정도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지만 아직은 몸이 건강하기 때문에 매일 붕어빵을 굽고 오뎅을 팔기 위해 동네 한 모퉁이로 출근한다.

하루 3만, 4만 원정도 팔면 '오늘 많이 팔았네'라고 생각하는 그는 붕어빵을 파는 것을 돈벌이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지나가는 사람이 배가 고파보여도 붕어빵 1, 2개를 슬며시 건네준다.

매일 오전 7시 육 할머니집으로 출근해서 돌봐주고 붕어빵 장사를 마치는 해질 무렵이면 또다시 육 할머니를 찾는다. 그리고는 저녁을 먹고 편히 잠드는 것을 보고서야 자신의 또 다른 초라한 집으로 향한다.

붕어빵 할머니가 나서자 육 할머니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내가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이 은혜를 어찌 갚을꼬…."

◇ 홀몸 노인 돕고 싶은데 …

육종임 할머니처럼 혼자 살고 있는 노인들을 돕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주변에서 알음알음 알고 있는 어려운 이웃을 직접 찾아가 돌봐주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겠지만 여의치 않은 경우가 많다. 이럴 때는 가까운 시자원봉사센터나 8개 구·군별 개별 봉사센터를 찾아가면 된다.

1. 자신이 뭘 할 수 있는지 상담부터 받는다=먼저 자원봉사센터를 찾아가 자신이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이 어떤 것이 있는지 어디에서 언제,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등 6하원칙에 근거한 봉사능력을 검증받는 것이 필수. 법률, 의료, 전기, 통역 등 전문기술이 있다면 활용가치가 더 높다.

2. 상담 후 참여=1년 365일 자원봉사를 실천하자는 의미를 담은 '1365'번은 언제든 가까운 구·군 자원봉사센터로 바로 연결되기 때문에 자원봉사 관리자와 상담가능하다. 인터넷 홈페이지 나눔넷(http:/nanum.daegu.go.kr)에서 자원봉사신청을 하면된다. 대구시 종합자원봉사센터는 053)652-8075.

3. 교육 및 평가활동이 필수=자원봉사도 알아야 잘 하는 법. 현장에 나가기 전 홀몸노인, 장애우들이 꺼려하는 부분 등에 대한 기본지식을 습득하는 오리엔테이션 교육을 받고 나면 금상첨화.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사진:붕어빵 할머니 김옥선(72) 씨가 13일 오전 육종임(72·여) 씨를 찾아가 국화빵을 먹여주고 있다. 정우용기자 sajaho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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