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분업 시스템…'줄기세포' 본 사람 없어

입력 2005-12-16 09:04:49

PD수첩 제기 연구 논문 의혹

시시각각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한편의 극적인 드라마를 펼치던 황우석 교수팀의 환자 맞춤형 배아줄기세포 확립 연구 의혹이결국 '논문 조작극'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애초 PD수첩의 문제제기에서 발단이 됐다. 그러나 PD수첩이 비윤리적 취재태도로 국민 여론의 역풍을 맞으면서 황 교수팀은 한시름 놓는 듯했다. 하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정부와 기존 학계가 침묵하고 있는 사이 생명공학 전공 소장파 교수들과 네티즌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사진 조작 논란, DNA지문 조작 의혹 등 황 교수팀 논문의 하자의혹이 연이어 터져나왔다. 이에 대해 황 교수팀은 해명하느라 바빴다. 의혹은 끊이지 않았고 황 교수팀이 이런 여러 의혹을 속시원하게 해소하지 못하자 황 교수팀을 떠받치던 국민 여론의 흐름에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다.

황 교수를 지지하던 외국 학계의 입장도 재검사를 통한 의혹 해소쪽으로 기울었다. 사이언스 논문의 교신저자인 피츠버그대 섀튼 박사가 공동저자 명단에서 자신의이름을 빼 줄 것을 요구하고, 세계 줄기세포 연구자들도 제3의 기관을 통한 국제적인 검증을 주장했다.

황 교수팀의 소속기관인 서울대도 줄기세포 진위 여부를 가리기 위한 조사위원회 구성에 들어갔다. 하지만 서울대가 조사에 착수하기도 전에 황 교수 연구의 '진실'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PD수첩의 취재내용을 바탕으로 황 교수팀 배아줄기세포 논문 조작극의 전모를짚어본다.

◇발단 = 지난 6월초. PD수첩은 황 교수팀 연구와 관련해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이 허위일 가능성이 있고, 2004년 논문도 금전제공 난자와 연구원 난자를 사용하는등 연구윤리에 문제가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

이 중에서 난자 의혹 부분은 PD수첩이 '황우석 1탄'을 방영하고, 황 교수가 이에 대해 지난 11월24일 기자회견을 통해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마무리됐다. 문제는 '2탄'이었다. 노무현 대통령까지 나서 PD수첩 광고 중단 사태는 조금 지나친 것이라고 지적하고 PD수첩의 고압적 취재방식 역시 비판하면서 배아줄기세포진위 논란은 더욱 가열됐다.

PD수첩의 취재의 초점은 사실 난자윤리문제 보다는 논문의 진실성 여부에 맞춰졌다. 이는 최근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을 통해 공개된 녹취록에서 드러난다. PD수첩은처음 취재에 나선 후 6개월여 만인 지난 10월20일 미국 피츠버그대에 있는 황 교수팀의 K, P, 또 다른 P(여성) 연구원을 만나 배아줄기세포의 진위에 대해 집중적으로캐물었다.

PD수첩은 확신에 차 K연구원에게 2, 3번 줄기세포를 가지고 다른 줄기세포의 사진을 조작한 게 아니냐, 혹시 10살 척수장애 남자아이의 체세포로 만들었다는 문제의 2번 줄기세포가 미즈메디병원에 있는 수정란에서 추출한 줄기세포가 아니냐며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K연구원은 자신의 신원을 보호해 줄 수 있느냐는 요청을 3차례나 한 뒤 황 교수의 지시에 의해 "사진을 불렸다"고 '중대 증언'을 했다. PD수첩은 이후 11월 들어 황 교수를 정식 인터뷰해 그간의 취재내용을 밝히면서,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양측간의 합의아래 검증을 하기로 하고, 줄기세포 5개 라인(2,3,4,10,11번)과 동일한 환자의 모근세포를 넘겨받아 DNA검사를 실시했다.

11월17일 검사결과가 나왔다. 유의미한 데이터 수치가 나온 유일한 2번 줄기세포가 논문에 수록된 환자의 체세포 DNA와 일치하지 않았다. 즉, 환자 맞춤형 배아줄기세포가 아니라는 말이다. 애초 작성한 계약서 대로 재검사를 하기로 했으나, 황 교수팀은 검증 결과를 믿을 수 없고, 검사기관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2차 검증을 거부했다.

황 교수팀은 재검증은 없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후속 논문으로 논문의 진실성을 입증하겠다고 고집했다.

황 교수팀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는 여론을 등에 업은 배수진이었다. 이런 논리는 먹혀들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젊은 연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생물학연구정보센터 등의 과학사이트들을 중심으로 황 교수팀 논문의 허점이 하나하나 드러났다.

줄기세포 중복사진 의혹에 이어 DNA지문분석 결과에 대한 의혹들이 잇따라 제기됐다. 황 교수팀은 엉뚱한 변명만 늘어놨다.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런 해명에 의혹은더욱 커졌다. 급기야 재검증 요구의 목소리가 점점 힘을 얻었다. 서울대가 재검증에나섰고, 조사위원회 구성에 들어갔다. 극적 반전이었다.

◇PD수첩 무엇을 추적했나 = PD수첩은 '믿을 만한 제보자'로부터 제보를 받은뒤 전방위에 걸쳐 황 교수 연구팀 주변을 샅샅이 훑었다. PD수첩이 2탄의 가제목으로 뽑은 '누가 줄기세포를 보았는가'는 PD수첩 취재내용과 방향을 암시한다.

미국 과학저널 사이언스와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검증과정을 거쳤다고 하지만, 그 어느 쪽도 줄기세포 자체를 직접 보거나 확인하지 못했다. 오직 황 교수팀의 몇몇 관계자만이 줄기세포를 가지고 있다고 일방적으로 '주장'하고 있을 뿐이라고 PD 수첩은 의심하고 그 주장의 진위를 추적했다.

PD수첩 관계자는 "심지어 논문의 공동저자로 돼 있는 미즈메디병원 노성일 이사장과 피츠버그대 섀튼 박사 마저 환자 맞춤형 배아줄기세포를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PD수첩은 2005년 사이언스 논문과 관련된 인물들을 하나 하나 만나 환자 맞춤형배아줄기세포가 과연 확립됐는지, 검증 작업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줄기세포의 진위 여부에 점점 더 의심을 품게 됐다.

여기에 황 교수팀이 실용화와 상용화에 한발 가까이 다가간 연구라며 자랑했던2005년 논문과 관련해 특허를 출원하면서 한국세포주은행에 줄기세포를 기탁하지 않은 점도 미심쩍은 요인으로 작용했다. 특허 취득을 위해서는 줄기세포를 지정 기탁기관에 맡겨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은 줄기세포가 없어서 기탁하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또 PD수첩이 만나는 연구자들마다 진술이 엇갈리는데다, 녹취록에 나와 있듯이특히 줄기세포가 생체내에서 다분화하는 능력을 가진, 즉 진짜 줄기세포인지 여부를검사하는 테라토마 검증 절차에서 황 연구팀의 어느 누구도 속시원한 답변을 하지못한데서 결정적인 단서를 잡았다.

PD수첩은 이런 과정을 거쳐 나름대로 확신을 갖게 됐다. 미국 피츠버그대 현지에서 K연구원을 몰아치듯 '추궁'하게 된 것도 이런 확신 때문이다. 게다가 황 교수팀은 무슨 약점을 잡혔는지, PD수첩의 1차 검사 요구에 순순히응했다. PD수첩의 취재내용이 상당한 진실에 가깝다는 것을 의미로 해석된다.

더욱이 황 교수팀은 PD수첩이 DNA검사결과를 내놓은 뒤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11월 29일 애초 사이언스에 논문을 발표할 때, 7개의 줄기세포(2,3,4,5,6,7,8번)가생체내 다분화 능력을 가진 '완전한 줄기세포'라고 했던 것을 급히 수정해 2,3,4번줄기세포만이 테라토마를 확인한 진짜 줄기세포라고 정정 보고하며 의혹을 자아냈다.

◇'논문 조작' 어떻게 숨겼나 = 황 교수팀은 30여명에 이르는 메머드급 연구진용을 꾸리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 많은 연구원들을 속였을까. 줄기세포 조작 작업에는 황 교수와 최측근인 강성근 교수, 이병천 교수 등 극소수의 관계자만이 직간접적으로 간여했기에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피츠버그대에 있는 황 교수팀의 K연구원은 이와 관련, PD수첩과의 인터뷰에서 "황 교수가 2개의 줄기세포를 가지고 10장 정도의 사진을 만들어라"고 지시했으며, 황 교수가 지시할 때 옆에는 강 교수만 있었다고 '중대 증언'을 했다.

이런 증언으로 미뤄볼 때 황 교수와 강 교수, 그리고 K연구원 정도만이 줄기세포 조작의 전모를 알고 있었다고 할 수 있는 셈이다. 심지어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 조차 "연구팀 내부에서 조차 의심스러워 황교수에게 (줄기세포가 과연 있는지) 몇번이나 캐물었다"고 말했다.

황 교수의 연구동료인 안규리 교수도 줄기세포의 존재를 믿었으나 최근 제기된의혹들에 제대로 반증을 못해 의심을 갖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극비리에 조작이 이뤄졌다는 말이다.

줄기세포 연구는 철저히 분업 시스템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연구원들은 각자 맡은 연구업무에 몰두하느라, 자신들이 실제로 줄기세포 연구에 참여하고 있으며, 또연구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사이언스에 논문을 보낼 때는 교신 저자인 피츠버그대 섀튼 박사의 도움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유대인 출신인 섀튼 박사는 미국 과학계에서 영향력이 상당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이미 2004년에 한번 논문을 통과한 적이 있기 때문에, 같은 체세포 핵이식복제기술을 이용한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의 경우 거의 의심없이 받아들여졌을 것으로 보인다.

◇ 정부는 그동안 뭐했나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성과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면서 과학기술부와 보건복지부, 특허청 등 범정부적으로 추진해온과학기술 육성정책이 도마위에 오르고 있다. 무엇보다 수백억원의 예산을 쏟아부으면서도 황 교수가 추진해온 줄기세포 연구프로젝트에 대한 검증과 평가 등 관리기능을 전혀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됐다.

특히 의혹이 확산되는 시점에서도 후속논문을 통한 검증과 천문학적인 예산 지원 방침을 공표하면서 의혹을 제기하는 네티즌 등에 대해서는 '불순한' 의도가 있지않느냐는 감정적인 시각을 드러내기도 해 정부의 책임을 둘러싼 논란은 상당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황우석 교수의 개인적인 허영과 과욕으로 빚어진 참사로 규정, 책임을 떠넘기기에는 국가의 신인도 추락과 이미지 하락, 한국 과학계의 위상 추락 등 파문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기부는 올해 '최고과학자연구지원사업' 명목으로 황 교수 개인에 대해 30억원을 지원했으며, 지난 8월에는 200억원 가량의 연구시설비를 투입, 서울대 관악캠퍼스에 황 교수 연구팀이 사용할 '의생명공학연구동'을 착공하는 등 엄청난 예산을 투입해 왔다.

이에 뒤질세라 보건복지부도 황 교수의 줄기세포 의혹이 확산되는 시점에서도수백억원의 예산 지원 방침을 밝히고 정책적인 지원도 뒤따를 것임을 약속하는 등전폭적인 지지방침을 분명히 했다.

BT산업을 우리나라 경제를 먹여살릴 차세대 성장동력 산업으로 보고 정부 차원에서 예산과 정책 등 거의 모든 부문에서 사실상 총력 지원체제를 본격 가동한 셈이다. 줄기세포 논란이 국내를 넘어 해외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차분하고 냉정하게 대처, 중립적인 관리기능에 나서야 할 정부가 논란의 한 축으로 나서 황 교수를 두둔하고 비판세력을 오히려 견제하고 나서는 웃지 못할 상황을 연출했다는 지적이다.

초반부터 연구비를 지원해온 과기부는 최근 황 교수의 줄기세포 논란이 확산되자 "후속논문을 통해 검증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오 명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은 황 교수가 입원중인 서울대 병원을 직접 찾아가 위로와 함께그같은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과기부는 특히 서울대가 황 교수의 연구성과를 재검증하기 위한 조사위원회 구성계획을 발표하는 순간까지 '황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가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며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결국 황 교수의 연구 프로젝트에 예산을 지원해온 정부가 본연의 관리기능에 충실하지 않고 엉뚱하게 '감상적인 애국주의'에 편승, '감싸기'로 일관해 사태를 더욱확대시켰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만드는 대목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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