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미안하단 말을 하지 않는 거래요"라는 명대사를 남긴 영화 '러브 스토리'. 불치병의 연인을 향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사랑이 아름다운 여운으로 기억되는 영화다. 또 하나, 전편에 흐르는 프란시스 레이의 감미로운 음악은 35년이 지난 지금껏 수많은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선율로 남아 있다. 특히 두 주인공이 눈밭에서 뒹굴며 눈장난을 치는 장면에 등장하는 주제곡 '스노 플로릭(Snow floric)'은 언제 들어도 겨울 정취가 물씬 묻어난다.
영남지역은 마른 겨울이 계속되는데 다른 곳에선 사나흘이 멀다고 대설주의보 소식이 들려온다. 차 위에 스키장비를 싣고 어디론가 떠나는 차들이 더러 눈에 띈다. 본격적인 스키시즌이다. 요즘은 레저 취향도 부쩍 고급화돼 겨울엔 온통 스키니 스노보드니 한다. 외국으로 스키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하지만 40, 50대 이상 중장년층에겐 이맘때처럼 코가 얼얼한 한겨울이면 문득 떠오르는 그리운 풍경이 있다. 스케이트, 아니 '시겟또'의 추억이다. 겨울이 오면 아이들은 시겟또를 만들었다. 헌 나무 판대기를 얼기설기 잇고 바닥에 철사를 붙인 앉은뱅이 시겟또. 겨울놀이라야 얼음지치기나 팽이놀이가 고작이던 때의 이야기다. 연세 지긋하신 퇴직 교사들은 "겨울이면 시겟또 만드는 아이들 등쌀에 학교 창문의 레일이 남아나질 않았다"고 말한다. 균형을 잡기 위한 손잡이는 나무 작대기에 쇠못을 박았다. 부엌의 연탄집게를 작대기 삼아 시겟또를 타다 엄마에게 야단맞는 아이들도 있었다.
처마끝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열릴 때면 마을 앞 도랑이며, 못이며 얼음이 있는 어디에고 아이들이 있었다. 꽁꽁 언 얼음판 위를 씽씽 미끄러지노라면 까짓 고추바람도 겁안났다. 넘어지고 엎어지면서도 신이 났다. 외줄 시겟또를, 그것도 서서 타는 묘기를 과시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함박눈 내리는 날이면 내리막길은 비료포대를 타는 아이들 천지였다. 턱밑까지 늘어진 누런 콧물을 후룩 들이마시던, 양 볼이 빨갛게 얼었던 아이들, 어른이 된 지금도 겨울이면 시겟또며 비료포대가 타고 싶어질까.
온라인 게임의 폐해가 심각하다 한다. 게임 중독 자녀가 말리는 부모에게 손찌검을 하질 않나, 게임하다 죽질 않나. 이런 찝찝한 뉴스가 들릴 때면 지난 시절 시겟또의 추억이 선연히 떠오르곤 한다.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