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치매] 도통 기억이 안나네…

입력 2005-12-12 09:55:12

대학생 정모(26세.대구시 달서구 죽전동)씨는 휴대폰이 고장 나서 서비스센터에 수리를 맡기는 바람에 한 달 동안 다른 휴대폰을 사용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때부터 '단절된 세상'을 살아야 했다. 연락을 하고 싶어도 기억나는 전화번호가 거의 없었다. 그는 "한달 동안 주변 사람들과 연락이 되지 않아서 불안했다"며 "그 일 이후로 전화번호를 수첩에 따로 적고 있다"고 말했다.

컴퓨터나 휴대폰 등 버튼 하나로 모든 것이 입력되고 출력되는 디지털 세상. 하지만 디지털 기기에 너무 의존한 결과, '디지털 치매'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 같은 증상을 'IT 건망증', 이런 사람들을 'IT 멍청이'라고 부르고 있다.

정혜영(21'대학생'대구시 달서구 월성동)씨는 "펜을 잡고 손으로 글을 쓰는 것보다 컴퓨터 자판이나 휴대폰 문자를 치는 것이 훨씬 익숙하고 편리하다"며 "어릴 때는 사람들의 이름이나 전화번호 등을 잘 기억하는 편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잘 기억하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재영(40'회사원'대구시 수성구 시지동)씨는 대형소매점 주차장에 세워 둔 자신의 차를 찾지 못해 해매고 다니는 일이 잦다. 김씨는 "사실 번호를 보고 가지만 쇼핑을 하고 나오면 까마귀 고기를 먹었는지 까맣게 잊는다"고 했다.

1990년대 초반 노래방이 등장하면서 야유회나 식당에서 젓가락 장단에 맞춰 노래 부르는 풍경은 거의 사라졌다. 애창곡도 가사 없이는 노래부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윤석(38'회사원'대구시 남구 대명동)씨는 "야유회에 갔다가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노래방에서 수 십 번은 불렀던 노래인데도 가사가 생각나지 않아 제대로 못불렀다"고 말했다.

◇ 디지털 치매 체크 리스트

1. 휴대폰을 가져오지 않은 날 친구 전화번호보다 단축키 번호가 먼저 생각난다.

2. 노래방 기기에서 나오는 가사 없이는 끝까지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몇 곡 없다.

3. 외우고 있는 전화번호는 집과 가족의 전화번호가 전부다.

4. 암산한 값을 확신하지 못해 계산기로 다시 검산하곤 한다.

5. 컴퓨터에서 찾아 쓰는 한자에 익숙해 책을 읽을 때 한자가 나오면 막막하다.

6. 두 번씩 물어보는 경우가 잦다.

7. 지도보다 휴대폰 자동 길 안내 장치나 GPS에 의존한다.

8. 손으로 글씨는 쓰는 것보다 휴대폰 문자 메시지나 키보드 입력이 더 편하다.

9. 전날 먹은 식사 메뉴가 잘 생각나지 않는다.

10. 처음 만났다고 생각한 사람이 사실은 전에 만났던 사람이었던 적이 있다.

11.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가다가 내려야 할 정류장이 어디인지 갑자기 기억나지 않는다.

12. 전화를 해 놓고 용건을 잊어버린다.

13. 인터넷을 하다가도 여기 저기 서핑을 하다보면 정작 내가 꼭 들러야 하거나 검색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나지 않아 답답한 경우가 있다.

14. 친구와 대화는 MSN이나 이메일 등 컴퓨터를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5. '왜 같은 얘기를 자꾸 하느냐'는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

16. 휴대폰을 잃어버리거나 인터넷 접속을 못하는 상황이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12월 8일자 라이프매일 www.lifemaeil.com)

김교영기자 kimky@msnet.co.kr 사진 박순국편집위원 toky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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