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백화점VIP 담당 박주영씨

입력 2005-12-12 08:44:02

"고객님을 사랑합니다 전 프로니까요"

"편하겠다구요? 어휴, 잘 모르셔서 하시는 말씀이죠. 항상 긴장 속에서 산답니다. 얼핏 보기에는 깔끔한 유니폼을 입고 쾌적한 환경에서 근무하니까 마냥 좋아보일지 모르지만 고객님들을 응대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대구백화점 프라자점 VIP휴게실인 '애플라운지'를 담당하는 박주영(25) 씨. 2시간 가까운 인터뷰 내내 단 한 차례도 '고객'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고객님'이라고 꼬박꼬박 호칭하는 것을 보며 일종의 '직업병'이라고 생각했다면 지나친 것일까? 짧지 않은 인터뷰 시간 동안 까르르 웃기도 하면서 제법 긴장이 풀어졌으리라 짐작했는데도 한 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모습. 아직 앳된 모습이 남아있는 얼굴이지만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며, 몸 담은 직장에 대한 애착만큼은 진정한 프로라는 느낌이다.

대구산업정보대 관광계열에서 일본어를 전공한 박씨는 지난 2002년 1월 대구백화점에 입사했다. 당초 전공을 살려 관광통역 가이드를 꿈꿨지만 마침 백화점 공채 공고를 보고 진로 수정을 결심했다고. 내년이면 벌써 직장생활 5년차. 처음 입사한 뒤에는 안내데스크에서 일했다. 만 2년 동안 백화점의 얼굴로 활동하며 많은 고객들을 만났다. 그러던 중 지난 2003년 12월 '애플라운지'가 신설되면서 VIP 담당으로 발령이 났다. 백화점에서 가장 중요한 고객이자 까다로운 고객일 수도 있는 VIP를 상대하는 자리를 맡게 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 하지만 그는 그저 "어느 날 인사발령이 났던데요"라며 생긋 웃고 만다. 겸손한 건지, 무심한 건지….

현재 대백프라자 애플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는 VIP 고객은 약 1천200명. 6개월마다 회원 자격이 갱신되는데 25% 정도가 바뀐다고 한다. 지금까지 5차례 회원 자격이 갱신됐는데 1기부터 지금까지 VIP 자격을 유지하고 있는 고객은 400여 명. 주영 씨의 경우 애플라운지가 문을 열 때부터 근무하다보니 웬만한 고객은 이름부터 취향까지 파악하고 있을 정도다.

"친구들이 '그저 차 배달하는 일을 한다'고 말할 때면 화가 나요. 고객님들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 미소와 태도까지도 백화점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항상 긴장하고 일관된 자세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답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출입하다보니 꼴불견 고객도 있을 법하다. VIP 고객 한 명당 3명을 동반해서 출입할 수 있지만 종종 이런 규칙을 어기는 경우도 있다. 또 피곤하다며 테이블 위에 발을 올려놓는 고객도 있다. 고객사은행사 정보를 잘못 안내받고 와서 엉뚱하게 화풀이하는 고객도 있다. 기분이 상한 고객이 아래위로 훑어보며 명찰을 눈여겨볼 때는 식은 땀이 흐른다. 하지만 결코 화를 내거나 내색할 수 없다. 행여 얼굴에서 굳은 표정이라도 묻어날까봐 조심 또 조심한다. 프로니까.

"다과를 대접할 때나 애플라운지를 이용하고 나갈 때 '고맙다'고 말씀하는 고객님들을 보면 뿌듯함을 느낍니다. 그만큼 만족스런 서비스를 받고 간다는 뜻이거든요. 스트레스도 많고 항상 긴장해야 하지만 하고 있는 일이 참 좋습니다."

김수용기자 ksy@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