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 美 입장 바뀌나?

입력 2005-12-08 10:14:20

라이스 국무 '해외서도 고문금지' 수용시사

미국이 국제사회와 여론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해외에서는 예외'라는 고문에 대한 그동안의 입장을 바꿨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7일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한 기자회견에서 " 고문방지협약 가입국으로서 미국의 의무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세계 어느 곳의 미국인에게 적용된다"고 말했다. 라이스 장관은 "미국인은 어디에서든 미국의 법과 미국이 지는 국제적 의무 아래 활동한다"고 덧붙였다.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외무장관 회의를 위해 벨기에 브뤼셀로 출발하기 전에 발표한 라이스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은, 협약 준수 의무가 미국 영토 안에만 국한된다는 미 정부의 종전 입장과 다른 것이어서 주목된다. 이에 대해서는 국제적 여론의 압력에 굴복한 것이라는 해석과 함께 나토 외무장관 회의 등을 전후한 시점에서 일단 비판의 예봉을 피하고 외교적 갈등을 줄이기 위한 '진화용 발언'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미, 한발 물러섰나 = 분석가들은 라이스 장관의 이번 발언이 국내외에서 점점 커진 고문 반대 목소리로 인해 정책을 변경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풀이했다. 미국은 지금까지 앨버토 곤잘러스 법무장관을 중심으로 '잔인하고 비인간적이며 비열한'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 고문방지협약이 해외에서 활동하는 미국인에게 예외가 될 수도 있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이에 대해 국제 인권단체들은 이 같은 미 정부의 해석이 미 중앙정보국(CIA)으로 하여금 테러와의 전쟁 과정에서 구금된 사람들에게 익사당할 것이라는 공포감을 주는 등의 가혹행위를 할 수 있도록 허점을 열어준 것이라고 비난해 왔다. 미국에서도 존 매케인 의원이 내놓은 포로 고문 금지법안이 의회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은 미 행정부에 부담이 돼 왔다. 게다가 라이스 장관이 참석할 나토 외무장관 회의에서 비록 공식 안건으로 제기되지는 않았지만 미 중앙정보국(CIA)의 주도로 이뤄진 테러 용의자의 이송 문제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은 상태였다. NATO의 한 관리는 "그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면 놀라운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엔에서는 여전히 논쟁 = 라이스 장관의 발언과는 별개로 유엔에서는 미국의 테러용의자 비밀 이송 문제를 놓고 설전이 벌어졌다. 루이스 아버 유엔 인권고등판무관은 이날 "무슨 수단을 쓰든 안보 목적만을 추구하는 것은 세계를 안전하지도, 자유롭게도 만들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존 볼턴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미국이 한 것으로 의심받고 있는 행위들에 대해 언론에 대고 언급한 데 대해 '실망스럽다'며 즉각 반박했다.

브뤼셀·유엔본부AFP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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