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DJ구하려 韓·美거래

입력 2005-12-07 10:55:38

이희호여사 정치포기 조건걸어

1980년 이른바 '5·17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형집행 여부를 놓고 신군부와 미국 백악관 사이에 긴박한 '거래'가 오갔음을 보여주는 자료가 처음 공개됐다.

또 김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도 남편의 구명을 위해 '정치활동 포기'를 조건으로 백악관 수뇌부에 뜻을 전달해 DJ 구명에 일조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은 6일 백악관이 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뒤 정치적 차원에서 DJ의 구명에 나섰다는 내용의 기밀문서와 이 여사가 백악관에 보낸 탄원서신 등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사료들을 공개했다.

이들 자료에 따르면 80년 10월 미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담당 책임자 도널드 그레그(전 주한 미 대사)가 이 여사의 탄원 편지를 받고 백악관 안보보좌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에게 서신의 내용과 자신의 의견을 더해 문서로 보고했다.

이 여사는 80년 10월1일 여러 경로를 통해 그레그에게 재판의 부당성을 알리고 DJ 구명을 바라는 영문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에서 그는 "사형을 면하면 정치를 포기하고 기독교 신앙을 보급하는 일을 하겠다"는 계획을 함께 적었다.

'DJ를 구명해야 한다'는 보고를 받은 브레진스키는 80년 10월 20일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에게 "김(DJ)의 구명을 위해 사적인 방법을 동원해 한국정부에 지속적으로 강력한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편지를 전달했다.

특히 카터 대통령에게 보낸 이 편지엔 80년 8월 대통령에 당선된 전두환 씨가 10월 DJ의 구명문제에 대한 미국 수뇌부의 정황을 살피려고 '믿을 만한' 장교를 미국에 밀사로 보냈다는 사실이 기록돼 있다.

즉 정권 창출의 정당성과 미국의 '승인'이 필요했던 신군부는 대외적으로 DJ를 사형하겠다고 위협하면서도 밀사를 미국에 파견, 'DJ카드'를 손에 쥐고 미국과 협상을 시도한 것으로 풀이된다. 브레진스키 보좌관은 카터 대통령(민주당)에게 "김이 사형된다면 미국 내 수많은 단체가 항의시위를 할 것이며 이런 상황이 진행된다면 오직 북한에만 혜택이 돌아갈것"이라고 우려해 DJ의 구명운동을 인도적 차원보다 정치적으로 고려해야 함을 내비쳤다.

김대중도서관은 또 10·26(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뒤 한국의 정치상황에 대한 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카터 행정부가 꾸린 최고위 비밀정책팀 '체로키'가 작성한 '코리아 포커스' 문서 일부도 이날 공개했다. 체로키 문서란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미국의 개입 여부를 밝혀주는 중요 자료로 관심을 모았던 주한 미대사관과 미 국무부 간 비밀문서를 말한다.

리처드 홀브루크 당시 미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전 미국 유엔대사)는 윌리엄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 미 대사에게 "DJ의 처형이 미국의 대(對)한국 정책에 가장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의견과 함께 구체적 대안을 물었고(80.9.22) 글라이스틴 대사도 "DJ가 사형당하면 미국은 평양에게 문을 열어야 한다는 미국 일부의 요구를 포함해 극단적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80.11.21).

1981년 출범한 로널드 레이건 공화당 정부는 취임 다음날 전 대통령의 방미를 발표했고, 사흘 뒤 전 대통령은 DJ의 감형을 선언했으며, 같은 해 2월2일 레이건 대통령의 '기대 이상의 환대' 속에 백악관을 방문했다.

김대중도서관 측은 "이들 문서는 1980년 미국이 DJ의 구명운동에 적극 나선 것은 한국의 민주주의나 인권보다 안정과 질서를 우선시했고 백악관이 DJ의 구명을 조건으로 전두환 군사정부를 승인하고 한미관계 정상화를 유도했다는 점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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