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78세인 클라크는 반전·평화주의자라는 이미지를 굳혀 놓고 있다. 그는 1960년대 린든 존슨 대통령 정부에서 법무장관까지 지냈지만 관직을 떠난 후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슬라비아 대통령 등 미국의 '적'들과 친하게 지낸 독특한 이력을 쌓아왔다.
그는 특히 올해 초 미국의 각계 저명인사 9천여 명이 반전을 주창하며 뉴욕타임스를 통해 발표한 반(反) 조지 부시 대통령 선언에도 동참했다.
2차대전 때 해병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미국 정부의 이익을 위해서만 일했던 그가 전쟁반대를 외치는 평화주의자로 변신한 것은 법무장관 재임 중 지켜본 베트남전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클라크는 법조인으로서 80년대 이후 군사력을 앞세운 미국의 패권주의에 반대하며 세계 곳곳에서 벌어진 전쟁범죄를 고발하는 일에 매달렸다. 그는 91년 걸프전 당시 민간시설에 대한 미국의 폭격이 의도적으로 자행됐다는 의혹을 제기해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같은 해 국제행동센터(IAC)란 이름의 반전평화운동 단체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의 미군에 의한 양민학살 문제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클라크가 후세인을 처음 만난 것은 1991년 걸프전 발발 전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걸프전 후에도 미 행정부의 경고를 무시하고 유엔의 금수제재를 받던 이라크를 여러 차례 방문해 의약품과 생필품 부족사태를 초래하는 유엔 제재의 문제점을 부각시켰다.
그는 이라크전쟁 발발 직전인 2003년 2월 마지막으로 후세인을 보고 지난달 28일의 2차 재판에 변호인 자격으로 처음 참석해 후세인을 다시 만났다. 클라크는 후세인이 체포된 후 "내 도움을 필요로 한다면 그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돕겠다"며 변호인으로 자청하고 나서 부시 행정부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그러던 중 후세인이 그의 제의를 받아들여 변호인단 합류가 전격 성사됐다.
카이로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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