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 사회도 인구 고령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보건의료 서비스 질이 높아지면서 평균수명 연장을 이룬 결과이다. 산아제한 정책이나 교육 수준 향상도 단단히 한몫했다. 이렇게 인구 구성 측면에서 사회가 변화하자 등장한 것이 노인문제이다.
흔히 노인의 지위는 사회가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벗어던지고 근대화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달라진다고 한다. 과학기술, 도시화, 대중교육은 근대화와 노인 지위 약화의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무병장수하고픈 인간 욕망을 채워주기 시작한 초기 기술들이 정년퇴직제도를 낳았는가 하면, 도시화가 노인 일자리를 물리치는 대신 새로운 직종을 만들어내고, 교육 기회 확대로 세대간 경쟁이 초래되었으니 그렇다.
그런데 이쯤에서 다행스러운 것은 고도사회로 들어서면 노인 지위가 하락을 멈추고 조금씩 나아지리라는 전망이 있어서이다. 놀라운 반전은 퇴직자와 실업자를 부양할 만큼 넉넉한 살림살이에다 연륜 쌓인 세대의 자의식이 되살아나 가능해진다고 한다. 실제로 주변의 흐름을 자세히 살펴보면 낙관적인 주장이 상당히 설득력 있어 보인다. 1960년대 이후 산업화를 겪으며 얼굴 가득 주름진 이들의 처지는 안타깝도록 기울었고,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에야 비로소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노인을 향한 사회적 관심은 여전히 부족하다. 요즘 도시나 농촌 할 것 없이 나이 지긋한 은퇴자들의 주된 걱정거리는 경제적 불안정과 질병이다. 한 단계 나아진 복지 대책이 아직 실행을 기다리는데다 아들 딸 뒷바라지하느라 노후 준비가 미흡했던 탓에 고통은 더하다. 물론 뒤늦게 찾아온 여유시간을 보람 있게 보내고자 그저 온종일 텔레비전을 시청하거나 따분한 일상으로 소일하기보다 적극적인 자기문화 찾기와 욕구 실현에 나서는 발걸음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노인세대가 지닌 문화의 자율성과 독자성, 그리고 이를 꾸준히 재생산하고 소비하려는 의욕에 대한 몰이해로 상처입기 일쑤다.
며칠 전 통계청이 발표한 사회통계조사 내용은 이와 관련해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우선 노인 절반 이상이 "자녀와 함께 살고 싶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고, 다수가 그처럼 지내는 쪽을 편하게 여겼다. 여기에다 본인이나 배우자 부담으로 생활비, 병원비를 충당하는 사례가 자녀 지원에 의존하는 숫자보다 훨씬 많아 뜻밖이었다. 일반적으로 우리 사회 노인들의 형편이 뻔한데 손수 벌어 쓰며 자식들과 떨어져 생활하다니 힘든 사정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정신적 편안함과 성취감 못지않게 고립감 역시 상당할 것이다.
이토록 어려운 현실을 밝은 모습으로 바꿔나가는 중요한 시도 가운데 하나가 관심과 접촉이다. 가족, 친구와 자주 오가는 노인일수록 심리적 흔들림이 적다. 자신이 가진 것은 아무런 가치 없는 옛이야기가 아니라 나름대로 뚜렷한 의미가 담긴 삶의 자취라는 사실을 설득하고 알리면서 자연스레 자라난 자부심과 안도감 때문이다.
이제 한 해의 끝자락이다. 누구나 해 저물고 계절이 추위를 더하면 마음 가는 곳이 있다. 벌써 길거리에 늘어선 성탄절 장식들을 바라보며, 이즈음 젊은 세대나 이웃들이 노인들에게 따뜻한 대화를 듬뿍 건네길 바란다.
오창균(대구경북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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