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자녀를 일터로 데려가는 날

입력 2005-12-02 08:51:48

유치원 다니는 꼬마들이 '소꿉놀이'를 하고 있다. 여자 아이들은 저마다 인형 하나씩을 들고 와서 젖병을 물리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옷을 입히는 등 부산을 떨다가 소꿉용 커피잔을 하나씩 들고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그런데 남자 아이는 마땅히 하는 일이 없다. 잠시 후 역할이 주어졌는지 남자 아이가 일어나 가상의 문 앞에 선다. 드디어 초인종을 누르고 의기양양하게 한마디한다. "택배 왔습니다."

우스개라 생각하겠지만 유치원에서 아이들이 노는 시간에 실제로 관찰된 일이다. 아이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엄마가 하는 일은 옆에서 늘 볼 수 있는 구체적인 것들이다. 요리를 하고, 청소를 하고, 시장을 보고, 자신들을 보살피고…. 하지만 늘 밖에 나가 있는 아빠는 무슨 일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대부분의 아빠들이 귀가시간이 늦다 보니 얼굴 대하기도 힘든 데다 운이 좋아 얼굴을 본다 해도 대부분 신문을 읽거나 스포츠 뉴스를 보느라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모방할 수 있는 남자 어른의 모습이 택배 기사나 자장면 배달원일 수밖에. 전업주부가 아닌 일하는 엄마의 경우도 밖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아이들이 모르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미국에서는 매년 4월 넷째 주 목요일에 '자녀를 일터로 데려가는 날(Take Our Daughters And Sons To Work Day)' 행사가 전국적으로 열린다. 이날이 되면 만 8세부터 12세까지의 어린이들이 부모의 직장을 방문하여 자신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된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된다. 부모가 없거나 색다른 직업을 체험하고 싶으면 다른 친지나 이웃 어른의 직장을 방문하거나 신청을 통해 멘토를 지정받아 그들의 직장을 탐방할 수도 있다. 1993년 '미즈재단'에 의해 뉴욕시에서 소박하게 시작된 이 행사가 대중적인 호응을 얻으면서 전국적인 행사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부모들의 뜨거운 관심과 함께 기업 및 기관, 대중매체의 후원을 통해 매년 풍성하고 내실있게 진행되는 프로그램 덕분이다. 이를 바탕으로 올해에는 무려 1천600만 명의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직장체험을 했다고 한다.

부모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자녀로 하여금 부모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준다. 또한 다양한 직업세계를 체험함으로써 장차 자신이 원하는 삶을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지 현실적으로 구상해 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 자녀들이 꿈꾸는 미래로의 여행을 시작하는 일, 부모의 직장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우리 지역에서 먼저 시작되길 제안해 본다.

정일선(경북여성정책개발원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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