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고교 졸업장에 '백의천사'
지난 25일 어머니가 머리를 심하게 다치셨다는 말을 들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세상에서 내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피붙이는 어머니뿐이기에. 주위 얘기로는 아는 분 식당에 들렀다가 술 취한 손님에게 맞아 머리뼈가 일부 부서졌단다. 200여만 원에 이르는 수술비와 치료비를 생각하면 막막해지지만 그나마 수술이 잘 끝났다니 다행이다.
우리 가족은 단칸방을 벗어나 본 적이 없다. 가진 것이 없었던 부모님은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 채 일에 매달려야 했다. 아버지는 막일 현장을 뛰어다녔고 어머니는 달성공원 앞에 리어카를 세워놓고 냉차와 핫도그 등을 파셨다.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은 내가 갓 돌을 지났을 무렵. 어머니는 홀로 남아 날 키우셨다. 어린 나를 업고 장사를 계속하셨지만 가난이라는 굴레를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여인숙. 낯설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겐 익숙한 단어다.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줄곧 여인숙에서 월세를 내며 살았다. 우리 집에 친구를 처음 데려간 날, 여인숙에 처음 와 본 친구는 당황스러워했다. 나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가족이 운영하는 여인숙이라고. 그날 어머니가 보시는 데서는 울지 못하고 몰래 밖에 나와 혼자 눈물을 흘렸다.
고등학교 문턱은 밟아보지 못했다. 학교 선생님이나 공무원이 되고 싶었지만 상급 학교 진학을 생각하기 어려운 내겐 이루기 힘든 꿈이었다. 아르바이트 자리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중졸이라고 하면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급기야 어머니마저 당뇨병에 걸려 자리에 누우셨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식당일을 하루 나가시면 집에서 1주일은 꼬박 앓아야 했다. 나 역시 허리디스크가 심해 힘든 일을 할 수 없는 처지였다.
마냥 앉아서 굶을 수는 없었다. 어머니와 단칸방에 쪼그리고 앉아 마늘, 밤을 깠다. 한 달 일해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20만 원 정도. 21세가 되어서야 직장다운 직장을 구했다. 카드대금을 대신 납부해주고 수수료를 챙긴다는 한 사무실의 경리로 들어간 것.
하지만 한 달 남짓 일했을까. 사장은 곧 돌려주겠다면서 내 이름으로 카드를 만들어 2천여만 원을 쓰고는 갚아주지 않았다. 자신의 재산은 합의이혼하기 전에 이미 아내 앞으로 해놓아 내가 받을 수 있는 돈은 없었다. 직장을 그만둔 내게 남은 것은 '신용불량자'라는 꼬리표뿐.
기름값이 비싼 요즘 방에 딸린 기름보일러는 그림의 떡이다. 연탄보일러를 사용하는 곳으로 옮기고 싶지만 그마저 여의치 않다. 지금 살고 있는 곳도 집 주인이 우리 사정을 딱하게 여겨 보증금 없이 들어온 방. 다른 곳으로 옮기기 위한 보증금을 마련할 방법이 없다. 최근 기초생활수급대상자로 지정돼 어머니 병원비 부담을 조금이나마 던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김희진(가명·25·여·서구 원대동) 씨의 까칠한 얼굴에는 화장기를 찾아볼 수 없다. 화장품은 희진 씨에게 사치일 뿐. 여태까지 분첩을 잡아본 횟수도 손에 꼽을 정도다. 남루한 겨울 점퍼차림의 희진 씨에게 또래 젊은이들처럼 꾸미고 가꾸는 것은 낯선 일이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몇 번 만나봤지만 이야기가 통하질 않더군요. 학교 이야기며, 직장 이야기들을 하는데 저는 낄 수가 없었어요. 그 애들이 부러웠어요. 지금은 안부전화만 가끔 주고받을 뿐 제가 피해요. 자격지심 탓이겠지요."
희진 씨의 꿈은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은 뒤 간호조무사가 되는 것. 하지만 그를 둘러싼 주변 환경은 꿈꿀 기회마저 허락하지 않는다. 자신감을 잃고 움츠러든 희진 씨의 어깨가 언제쯤 펴질까.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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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김희진(오른쪽)씨가 머리를 심하게 다친 어머니를 정성을 다해 간호하고 있다. 희진 씨는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은 뒤 간호조무사가 되는 게 꿈이다. 이상철기자 find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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