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나라 때 이야기다. 지방 현령의 가렴주구에 견디다 못한 백성들이 현령에게 부하들의 부정부패를 기록한 고발장을 냈다. 고발장을 읽어 본 현령은 깜짝 놀랐다. 부하들의 비리라고 고발한 내용이 모두 그를 겨냥한 것이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현령이 적은 글귀는 '여수타초 오이경사(汝雖打草 吾已驚蛇)'였다. '너희들이 비록 풀밭을 건드렸지만 나는 이미 놀란 뱀과 같다'는 내용이다. 백성들의 우회적인 고발을 자신에 대한 고발로 깨달았다.
◇ 상대가 알아차릴 수 있도록 에둘러서 말하는 것을 변죽을 울린다고 한다. 중심부를 치는 대신 가장자리를 건드려 소리를 낸다는 말로 요즘에는 핵심을 외면한다는 의미로 많이 쓰인다. 당나라 시절의 현령은 그래도 양심은 있었던 모양이지만 요즘 세태를 보면 변죽을 울려 고쳐지는 일이 드물다.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 주변만 훑고 넘어가는 일이 적잖다. 그래서 나라 전체가 호들갑을 떨고서도 지나고 나면 다시 원래대로다.
◇ 얼마 전부터 유행어가 된 이른바 게이트 사건들도 그랬다. 대형 사건들은 대부분 곪아 터지기 전에 수면 위로 떠올랐었지만 흐지부지 끝나곤 했다. 변죽만 울리고 지나간 뒤엔 어김없이 대형 사건으로 등장했다. 최근 사회를 시끄럽게 하는 거물 브로커 사건도 그렇다. 이미 그는 몇 년 전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검찰 주변에서는 그때 엄정하게 법을 집행했더라면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 황우석 교수팀의 난자 확보를 둘러싼 논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대통령까지 나섰고 방송 프로그램은 광고가 끊겼다. 그 의혹은 연구 과정의 윤리 규정 위반 여부다. 과학기술의 양면성을 감안할 때 그 과정의 윤리 준수는 중요하다. 그러나 핵심은 연구 결과가 가져 올 생명윤리 침해 문제다. 배아 줄기세포 연구 결과가 행여 인간 복제로 이어질지 여부가 핵심이다. 그런데도 모두 연구 과정의 윤리 문제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국민은 방송사를 비난하고 언론의 무책임을 따진다.
◇ 생명공학 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과제이자 인류를 파멸로 이끌 수도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배아 줄기세포 연구가 가져올 난치병 치료라는 달콤함에만 매달려 위험성의 가능성을 외면할 수는 없다. 연구 과정의 윤리 논쟁이 자칫 변죽만 울리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서영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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