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사람-첼리스트 박경숙씨

입력 2005-11-25 15:30:26

"작은 사랑의 나눔 첼로로 전달하죠"

"음악을 통해 나눔의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싶습니다."

오는 27일 독주회를 앞둔 첼리스트 박경숙(45·여·대구시립교향악단 첼로 수석) 씨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함이 묻어난다. 그래서일까. 그녀가 켜는 소리도 그녀를 닮아 있다.

40대 중반, 뒤돌아보면 아쉬움이 많다. "그동안 죽도록 사랑해 본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큰 즐거움을 주지도 못했던 것 같아요."그래서 이번 독주회는 "지금까지 받은 것들을 되돌려주는 무대로 꾸밀 것"이라고 했다.

지난 1999년부터 한 복지재단의 홍보대사로 활동하면서 각종 음악회를 열어 마련한 수익금을 조용히 이웃들에게 전해왔던 그녀가 이번만큼은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않는 이유는 '나눔 바이러스'를 퍼뜨려 많은 사람이 함께 손을 잡고 동참할 수 있는 길을 터놓고 싶은 마음에서다.

그녀에겐 인생의 동반자로 함께 갈 첼로가 있어 든든하다. 첼로는 이제 그녀에게 자신보다 더 소중한 존재다.

하지만 처음부터 첼로가 살갑게 다가온 것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어머니의 권유로 첫 대면을 한 이 악기는 그녀의 흥미를 끌지 못했다.

"소리는 잘 냈으나 번번이 연습하는 것이 싫어 소위 말하는 농땡이를 자주 쳤죠."정작 첼로가 자신의 반쪽이 된 것은 의외의 계기로 시작됐다. 가계가 기운 중3 때, 첼로 배우기를 그만두라는 주위의 권유에 오히려 오기가 발동했다. 그때부터 미치도록 첼로를 안고 연습만 했다. 원하는 소리가 나오지 않을 땐 밤을 샜다.

"그 순간들은 세상과 단절한 시간들이었던 것 같아요. 연습 때문에 흰머리도 많이 났고, 많은 사람도 만나지 못했어요. 사교성 없는 외골수가 됐죠."

그러나 연습을 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그녀가 켜는 첼로음에 귀를 기울였다. 각종 음악콩쿠르의 시상자 명단에 올랐고, 계명대 재학 중에 부산시립교향악단 수석 첼리스트로 입단하는 기회도 잡게됐다. 국내외 유명 악단의 협연 의뢰도 잦았다. 그녀를 데려가려는 '러브콜'도 잇따랐다.

지난해 5월 발매된 세계적 피아니스트 니나 코간과의 협연 앨범 '러시안 로망스'가 유명 레코드가게에서 판매 순위 1위를 차지했다는 또 하나의 기쁜 소식도 최근 귀에 들렸다. 러시아인의 삶의 애환과 기쁨을 담으려 홀로 으스스한 모스크바 지하철에 몸을 실었던 기억들, 그리고 계속된 연습들이 결국에 빛을 발한 것이라고 그녀는 자평한다.

직접 안아야 소리를 낼 수 있는 악기 첼로. 그래서 첼로는 연주자의 내면 속 감정을 그대로 읽어낼 수 있는 '심미안'과 같은 악기다. 그녀는 "첼로는 손으로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마음으로 연주하는 것이죠. 제게 첼로는 세상과 통하는 통로였고, 묵묵히 속내를 받아 주었죠."

'풍부한 저음과 고음의 화려한 음색의 밸런스를 조화시켜 진지하게 연주에 임하는 첼리스트'라는 평에도 그녀는 아직 모자란다고 말한다. 그래서 늘 자신에게 비판을 가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 그녀가 이번 독주회에 욕심을 잔뜩 내고 있다. 스트라우스, 브람스의 소나타와 같은 연주자로서는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는 스케일이 크면서 그 속에 내재한 암울함을 살려야 하는 곡들로 골랐다. 자신을 시험무대에 올려놓고 싶은 마음에서다.

또 하나는 불우한 이웃을 돕고, 특히 그녀의 음악적 감성을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도록 했던 3명의 음악 선배들 라빌 마르티노프 , 보그슬라브 마데이, 박탕 조르다니아에게 바치는 공연이다. 오펜 바흐의 '하늘의 두 영혼'은 그녀가 15년간 대구시립교향악단에 몸담으면서 만났던, 그러나 이미 고인이 된 외국인 지휘자 3인을 위한 노래다.

내년에는 더 바쁠 것 같다고 했다. 1월에 상하이 심포니오케스트라와의 협연, 5월에는 레닌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등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 예정돼 있다. 물론 더 많은 자선 연주회 공연들도 일정표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사진·이상철기자 finder@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