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

입력 2005-11-24 15:00:26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 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 천천히 발을

거두어갔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러 가고 또 헤어져서는 저렇게 천천히

돌아왔을 것이다

늘 맨발이었을 것이다

(하략)

문태준(1970∼ ) '맨발'

문태준이란 젊은 시인의 작품을 요즘 눈여겨보고 있다. 비유가 범상치 않다. 처연하고 절실하다. 사물의 본질과 핵심을 장악하고 꿰뚫어보는 통찰력이 대단한 시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작품은 어물전에서 팔리고 있는 개조개가 껍질 바깥으로 속살을 삐죽이 내밀고 있는 광경을 묘사하고 있다. 시인은 그 광경을 석가모니의 입적(入寂) 전후의 장면들과 흥미롭게 연결시킨다. 개조개를 보면서 시인은 빠져나온 속살을 장난스럽게 툭 건드리는데, 이런 자신의 행동을 입적한 부처에게 "조문하듯"이라고 말한다. 외부물체의 자극을 받은 개조개는 속살을 껍질 안으로 거두어들이는데 그 동작은 한없이 느리기만 하다. 이를 시인은 "최초의 궁리인 듯 가장 오래하는 궁리인 듯"이라고 표현한다. 이 시에서의 핵심은 후반부이다. "저 속도로 시간도 길도 흘러왔을 것이다" 우리네 삶은 지나칠 정도로 서두르고 조바심 내며 때로는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한다. 이 "빨리 빨리"가 지배하는 현실 속에서 독자 여러분께서는 삐죽 내밀었던 속살을 천천히 거두어들이는 조개의 그 완만함에 대하여 한번쯤 생각해 보시기를…….

이동순(시인)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