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협상안 통과…농민들 "농사 포기해야"

입력 2005-11-24 10:46:17

23일 오후 국회에서 쌀협상 비준안이 통과되자 경북도내 곳곳에는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분노한 농민들은 도로 여기저기에 수백 가마의 벼를 산더미같이 쌓아놓고 불태웠다. 구미에서는 한 농민이 분신자살을 기도하다 경찰에 제지됐으며 경남도청 앞에서는 농민이 불에 뛰어들어 중태다. '평생의 업이었던 농사를 포기해야 하나?'라는 자조, 분노의 목소리와 함께 농민들의 마음은 추수가 끝나 빈 들녘만큼이나 탄식과 절망감으로 텅 비었다.

◆버림받은 농민들=23일 국회비준 저지를 위해 화물차를 몰고 거리에 나섰던 쌀농가들은 귀갓길에 넓은 의성 안계평야를 바라보며 "정부가 쌀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땅만 파왔던 우리를 버렸다"고 울먹였다. 쌀전업농 최영호(46·의성군 안계면 안정리) 씨는 "정부가 아무런 대안 없이 국가 체면 등만 생각하고 쌀농가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이 이번에 비로소 확인됐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5천 평에 친환경농법으로 쌀농사를 짓는 김대환(34·봉화군 봉화읍 문단리) 씨는 "국회의원들이 350만 농민들의 피눈물 섞인 호소를 외면했다"며 "부농을 꿈꾸며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 이렇게 후회될 줄은 몰랐다"며 고개를 숙였다.

구미에서는 이모(51·구미시 산동면) 씨가 비준안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서울로 향하다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경찰에 저지당하자 갑자기 시너를 몸에 뿌리고 불을 붙이려다 경찰의 제지로 무산되는 등 도내 곳곳에서 농민들의 격렬시위가 잇따랐다.

◆미래 없는 쌀농사=조원희 상주농민회장은 "쌀 협상 국회비준은 농업과 농민에 대한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라며 "쌀값이 벌써 20% 이상 떨어진 상태에서 쌀협상 국회비준으로 내년 2월부터 수입쌀이 밥상에 오를 경우 쌀값 대란은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또 "쌀 농업 붕괴의 서곡인 쌀값 폭락은 쌀대란을 넘어 식량대란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쌀 협상 국회비준 처리로 쌀값하락은 구조적 문제로 이어져 쌀농업붕괴와 한국농업 전체의 붕괴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 분노했다.

김수종(52·상주시 사벌면) 씨는 "해마다 기름값 등 각종 영농비는 오르고 있는데 농민들의 주소득원인 쌀값은 자꾸만 떨어지고 있다"며 "수입쌀이 몰려들고 쌀시장이 개방되면 결국 농민 생존권마저 옥죄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제는 포기해야 하나?=김국진(60·군위군 의흥면 연계리) 한국전업농 군위군연합회장은 "우리야 나이가 있어 쌀농사를 계속 지을 수밖에 없지만 융자를 내 쌀농사를 짓는 젊은 농민들은 어떻게 하느냐"고 반문했다.

상주시 공성면 옥산리 최현만(67) 씨는 "그동안 쌀 농사에 한가당 희망을 걸고 농사를 지어왔으나 이젠 포기할 때가 된 것 같다"며 "몇차례 땅을 팔 것을 요구받아도 싫다고 했는데 이참에 땅을 팔고 수원에 있는 자식곁으로 갈 생각"이라고 했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최근 상주에는 논과 밭을 팔겠다는 매물들이 부쩍늘었다. 상주 으뜸부동산 강성호(40) 소장은 "최근들어 하루 3건 이상씩 논을 팔겠다는 농민들의 전화와 방문이 있다"고 전했다.

이희대·엄재진·마경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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