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화가 정관훈씨 교통사고로...
미국에서 밑바닥 생활을 하면서 오직 작품을 위해 유학 중이던 지역출신 화가의 부음 소식이 들려와 미술 관계자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비운의 주인공은 서양화가 정관훈(40·사진) 씨. 정씨는 지난 19일 자정쯤(현지 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린 친구의 전시회에 들렀다가 집으로 가던 중 음주운전자에 의한 뺑소니 사고를 당해 작가로서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영남대 미대와 계명대 대학원을 졸업한 정씨는 2000년까지 소위 '잘 나가던' 작가였다. 대구는 물론 서울에서 개인전을 연 것만 9차례, 나름대로 인정도 받았다. 그러나 정씨는 2001년 1월 미국 유학길에 나섰다. 이미 36세의 나이였지만 주위의 만류도 그의 뜻을 꺾지는 못했다. 그림을 팔아 마련한 유학비를 통째로 떼먹혔어도 상관없었다.
정씨의 유학 생활은 '치열함' 그 자체였다. 집세를 마련하기 위해 어시장 하역작업도 마다 않았다. 미국에서 쓰레기 취급받는 소뼈를 사 끓인 국으로 끼니를 때우며 13일간 두문불출하며 작업에 매달리기도 했다. 그러는 가운데에도 1년간 뉴욕의 화랑 400여 곳을 도는 강행군을 벌였다. 미국의 그림세계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치열한 작품활동은 2002년 드디어 빛을 발했다. 8월에 열린 '코너티켓' 공모전에서 900여 명의 참가작가 가운데 대상을 수상했다. 작업에만 매달리던 생활이 끝나고 드디어 작품을 팔 수 있게 됐다. 전시회도 이어졌다. 뉴욕작가회전, 한국미술협회전 등에 참가했다. 2003년 2월에는 동원화랑에서 도미 이후 첫 초대전을 열었고 작년과 올해 화랑미술제에도 출품했다.
사고 당시에도 개인전 계획이 잡혀 있던 상태였다. 정씨의 능력을 일찌감치 눈여겨본 손동환 동원화랑 관장은 "작가적 역량이 뛰어나고 인간관계도 돈독했다. 이제 겨우 빛을 발하려는 순간에 유명을 달리해 안타깝기 그지없다"고 상심을 토로했다.
그림 유학을 떠난 지 4년 만에 정씨는 한줌 재로 조국 땅에 돌아오게 됐다. 세밀한 정물에다 시원스런 여백을 특징으로 하는 정씨의 작품은 현지 친구들이 힘을 모아 추모전을 연 뒤 국내로 들어올 예정이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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