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3월 착공돼 1934년 11월 23일 완공·개통된 영도다리(당시 정식명칭은 부산대교)는 부산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였다. 개통식에 몰린 구경꾼만 6만 명이 넘었다.(당시 부산 인구는 16만 명, 이 중 5만 명이 영도에 살았다)
80도까지 들어올려지는 다리를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었다. 이 다리를 지나 일제가 수탈한 물품을 싫은 배가 지나갔고, 6·25 때는 많은 피란민이 한 많은 인생을 마감하기도 했던 곳이다.
영도다리는 1966년 9월 1일 급수용 상수관 연결과 늘어나는 교통량을 감당하기 위해 다리가 고정됐다. 1980년 1월 30일에는 부산대교가 새로 개통되면서 정식 명칭이 '영도다리'가 됐다. 개통 후 70년이 지난 영도다리였기에 철거 논란이 숱하게 일었다.
2002년 부산시는 보존 방침을 세웠지만 문제는 다시 불거져 나왔다. 영도다리 근처에 유원지를 세우려는 기업체가 해체를 요구했기 때문. 부산의 상징이 사라진다는 생각에 시민들의 반대운동이 거셌다.
결국 영도다리는 보존 결정이 내려졌고, 보수공사를 거쳐 다시 들어올려져 볼거리를 제공하게 됐다. 문화재를 지키려는 시민들의 자존심이 일궈낸 결과였다. ▲1993년 시인 김광균 타계 ▲1988년 전두환 전 대통령, 백담사로 은둔.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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