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學歷과 學力의 불일치

입력 2005-11-22 11:26:35

'문명충돌론'으로 유명한 미국 하버드대 새뮤얼 헌팅턴 교수는 경제발전 여부를 규정하는 '결정적 요소'로 '문화'를 꼽는다. 헌팅턴 교수가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는데 영감을 준 것은 바로 비슷한 경제상황에 있었던 한국가 가나가 왜 경제발전의 정도에서 엄청난 격차가 벌어졌는가 하는 문제의식이었다.

"60년대 당시 양국의 1인당 GNP 수준이 비슷했으며 1차제품(농산품), 2차제품(공산품), 서비스의 경제 점유 분포도 비슷했다. 특히 농산품의 경제점유율이 아주 유사했다. 당시 한국은 제대로 만들어내는 2차 제품이 별로 없었다. 게다가 양국은 상당한 경제원조를 받고 있었다. 30년 뒤 한국은 세계 14위의 경제규모를 가진 산업 강국으로 발전했다. (중략) 반면 이런 비약적인 발전이 가나에서는 이뤄지지 않았다. 가나의 1인당 GNP는 한국의 15분의 1 수준이다."('문화가 중요하다' 김영사)

헌팅턴 교수는 이러한 엄청난 발전의 차이가 생긴데는 문화가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했다. "한국인들은 검약, 투자, 근면, 교육, 조직, 기강, 극기정신 등을 하나의 가치로 생각한다. 가나 국민들은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다. 그러니 간단히 말해서 문화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가 여기서 제시한 한국의 문화요인 가운데 특히 교육은 한국의 경제발전에 절대적인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찢어지는 가난 속에서도 재산목록 1위인 소를 팔아 자식의 학비를 댄 우리 어버이들의 눈물겨운 내핍과 교육열은 인적자본의 축적으로 이어졌고 이는 변변한 자원 하나 없는 궁벽한 이 땅의 소중한 경제발전 자원이 됐다.

그런데 이러한 우리의 교육이 이제는 도로 경제의 발목을 잡은 장애요인이 될 조짐이다. 바로 심각한 학력과잉 문제이다. 한국경제연구원 박성준 선임연구원의 '청년층의 학력과잉 실태와 임금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를 보면 10~30대 청년층의 29.1%가 해당직업이 요구하는 이상의 학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곧 하향취업의 일반화이다. 그 원인은 "학력은 높지만 산업에서 요구하는 교육수준에 미달했기 때문"이라는 게 박 연구원의 결론이다. 말하자면 학력(學力)과 학력(學歷)의 불일치 현상이다. 그래서 한국에 귀화한 어느 외국인 교수는 "고등학교보다 약간 높은 수준의 교육을 비싼 돈을 받고 하는 것이 한국의 대학교육"이라는 모욕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배워서 남주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경제 측면에서 학력 과잉은 다른 부문에 쓰였으면 더 생산적인 결과를 낳았을 수도 있는 재원의 허비(기회비용의 상실)이다. 상식적으로 환경미화원에 대학졸업장, 9급 공무원직에 박사학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군단위에도 대학 1, 2개씩은 있는 우리의 교육인프라는 근본적인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 중환자라고 하면 너무 비관적인 생각일까.

정경훈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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