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동네-(3)반월문학회

입력 2005-11-21 15:38:44

예비소설가, 등단의 '滿月' 향해 '半月'

'대구·경북의 소설 기지를 만들자.' 소설문학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대구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소설문학 전문강좌 개설을 위한 논의는 1993년 새해 벽두 동부정류장 근처의 허름한 선술집에서 시작되었다.

소설을 전문적으로 강의하는 곳이 없음을 늘 안타깝게 여겨온 소설가 박희섭 씨와 당시 작가 지망생이었던 박은삼 씨의 주도로 '반월'의 첫 깃발을 올린 것이다. 만월(滿月)을 지향해서 이름을 '반월(半月)'로 지었다. 작가가 되기 위한 과정, 그것이 곧 만월로 가는 여정인 것이다.

문학평론가 신재기 교수(경일대)와 작가 엄창석 이연주씨가 소설 전문강좌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적극 나섰고, 시조시인 문무학 씨와 작가 이수남 윤장근 박신헌 씨 등 많은 문인들의 도움으로 반월의 항해는 시작됐다.

그러나 가난한 반월호는 늘 집 없는 서러움을 겪어야 했다. 1993년 4월 9명의 회원으로 출발한 제1기 개강식 때는 행사 시작 30분 전에 예약된 방송대 4층 빈 강의실이 없다는 통보를 받고 망연자실하기도 했다.

건물 지하에서 옥상까지 몇 번을 오르내린 끝에 겨우 지하 강의실 한쪽을 얻어 그것도 반쪽을 커튼으로 막고 개강을 했다. 기초강좌 안내와 수료 후 동인 결성 등 간략한 설명과 강사 소개를 하고 쫓기듯이 선술집으로 장소를 옮겼다.

출항부터 술과 인연을 맺은 탓인지 반월호와 술은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문학과 술은 어차피 필연이 아닌가. 몇 개월 뒤 더부살이의 서러움에서 벗어나 신천동에 반월방을 마련했다.

회원들이 모여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스티로폼을 깔고 도배와 장판으로 마감을 했다. '반월문학회'라는 현판도 작가 박희섭 씨가 직접 새겨 걸었다. 보잘것없는 공간이었지만, 그곳은 문학에 목마른 사람들의 우물가였다. 문학과 술과 사람 그리고 자유가 있었다.

밤낮없이 회원들이 들락거리자 경찰이 어떤 단체인지 조사까지 하고 간 촌극도 벌어졌다. 토요일 모임에는 으레 술잔치가 벌어졌다. 채워진 술잔만큼이나 가득했던 정담과 문학담론들. 누군가의 입에서 "바다로 가자"는 말 한마디가 나오면 회원들은 무작정 봉고에 올랐다. 바다는 반월의 또 다른 문학적 공간이었다.

여름이면 1박 2일로 하계임간소설교실을 떠났다. 저명한 강사들과 일반 회원들을 초청하는 문학행사였다. 2기 때의 일이다. 사나흘 내린 장맛비가 무색할 정도로 화창한 7월 중순, 거창 수승대 야영촌에 둘러앉아 이문열의 '금시조'를 놓고 밤늦도록 열띤 토론을 벌였다.

반월문학회가 결성된 지 어느덧 10여 년. 그동안 100여 명이 넘는 예비작가들이 반월방에서 소박한 문학의 꿈을 피웠다. 반월호의 열정만큼이나 작가도 적잖게 배출했다. 박은삼 박희채의 등단을 신호로, 장정옥 노명옥 이남영이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영광을 안았고, 김한숙 손경태 박경주 박옥순 등도 지역 일간지 문학상을 통해 등단을 했다.

또 이룸(이규성)은 심훈문학상으로, 허윤제는 신라문화제를 통해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반월호 강사들의 열정과 회원들의 문학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작가 엄창석 씨는 "반월에서는 학력이나 연령, 직업, 경력에 관계없이 오로지 문학만을 잣대로 삼았다"며 "지칠 줄 모르는 밤샘 문학토론에 초청 작가들마다 놀랐을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반월 출신 등단 작가들의 작품을 모아 '오늘의 젊은 소설'(1997)이란 소설집도 펴냈다. 제19호까지 펴낸 포켓용 소식지 '반월통신'은 '반월문학'이라는 단행본으로 묶었다. 동인들의 문학에 대한 소중한 꿈과 열정 그리고 회한과 절망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서다. '문청 에피소드', '창작실의 고민', '등단작 순례' 코너에는 문학을 향해 가는 이들의 내밀한 호흡들로 가득하다.

반월은 작가 지망생 위주의 소수 정예화냐, 소설문학 교실의 대중화냐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면서 조금은 소강상태에 놓여 있다. 그러나 아담한 텃밭에 옹골찬 소설의 씨를 뿌리기 위해 기다림이 있는 한 반월은 기울 수 없다. 명월(明月)이 만공산(滿空山)할 그날에 대한 그리움이 있는 한 항해를 멈출 수 없다. 인스턴트 불빛이 현란한 시대에 결코 요란하지 않게 어둠을 밝힐 반월의 문학행진을….

조향래기자 bulsajo@msnet.co.kr

사진: 반월소설교실 제4기 수료식 때. 앞줄 왼쪽부터 작가 엄창석, 이연주, 윤장근, 문학평론가 신재기, 시조시인 문무학, 한사람 건너 작가 박희섭. 뒷줄에 김옥숙, 정춘희, 박옥순 등 등단 회원들의 모습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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