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오니소스의 축제에 빠져보자
박물관에 가는 것은 마치 이야기의 숲에 발을 들여놓는 것과 같다. 유물 하나하나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지. 4천600년 전의 수메르 푸 아비 여왕의 수금은 언뜻 보면 금제 황소머리로 장식된 아름다운 고대 악기로만 보인다. 이 수금이 발굴될 때 여왕을 따라 순장당한 한 여성의 손이 수금 줄에 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느새 슬픈 가락의 음악이 들려오지 않는가. 그 여인은 어쩌면 여왕보다는 자신을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수금을 탔는지도 모른다. 신화가 본래 영원한 옛 이야기인 것처럼, 유물들이 이야기하기 시작할 때 신화는 비로소 살아 숨쉰다.
고대 그리스의 신들은 이야기를 통해 살아간다. 신들은 본래 자연의 힘과 삶의 원리를 다양한 형태로 구현하기 때문에 그들의 모습에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삶이 투영되어 있다. 신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이번 대영박물관 대구전에 전시된 유물들 중에서 기원전 2세기 고대 그리스의 헤르메스 상과 기원후 2세기경 로마시대의 디오니소스 상에 먼저 눈이 간다.
헤르메스 상은 정말 흠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몸매를 자랑한다. 긴 다리, 날씬한 허리, 적당한 근육, 작은 얼굴은 몸짱 그 자체이다. 헤르메스는 메신저와 여행자의 신으로서 손에는 본래 두 마리의 뱀이 휘감고 있는 케리케이온이라는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헤르메스는 여행자뿐만 아니라 민첩함을 요구하는 도둑과 장사꾼의 수호신이기도 하였으니 그의 몸이 단련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신화는 이렇게 고대 그리스의 삶을 말해준다.
반면,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와 아름다운 요정 세멜레 사이에서 태어난 주신(酒神)이다. 머리에 장식한 포도 덩굴과 왼손에 들고 있는 포도송이는 디오니소스의 징표이다. '도취의 신'으로 명명되기도 하는 디오니소스는 모든 것이 차이를 뛰어넘어 하나가 되는 열광적인 축제를 상징한다. 이 의식은 디오니소스의 로마 이름인 바쿠스를 따서 '바쿠스 축제'로 불리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보다는 감정을 강조하는 디오니소스의 추종자들은 종종 '미친 사람들'로 여겨지기도 하였다.
이번에 전시된 디오니소스 상은 어떤 느낌을 불러일으키는가? 세밀하게 묘사된 옷 주름에 반쯤 가려진 채 드러난 성기는 부드러움과 남성다움, 이성과 감성의 절묘한 조화를 말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도 지나친 생각. 이런저런 생각을 접어두고, 유물들이 스스로 말하도록 박물관의 디오니소스 축제에 빠져보자.
이진우/계명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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