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노무현 대통령이 "호남고속철도 건설은 인구나 경제성 같은 기존의 잣대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며 호남고속철도 조기 착공 가능성을 시사하자, 경제성을 이유로 이에 부정적이었던 이해찬 국무총리까지 조기 착공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경제적 논리가 '정치적 논리'에 의해 왜곡되어서는 안 된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 지난 4일 정부와 여당이 8개 첨단업종에 대해 수도권 내의 공장 신'증설을 한시적으로 허용한 것에 대해서도 수도권 민심달래기 차원의 '정치적 접근'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비행기를 안 띄우는데 비행장 만들어서 뭐 할 겁니까. 고추 말릴 겁니까?" 이는 지난 5월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정치적인 이유'로 이루어지는 지방공항 건설을 질타하면서 던진 질문이다. 정치학도인 필자로서는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이래저래 '정치적'이라는 용어는 부정적인 의미로 잘못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수준의 정치에서 '정치적 논리'는 국정운영의 기본원칙이고 철학이다. 이러한 기본원칙과 철학에 따라 사회적으로 희소한 자원을 배분하는 것이 '정치적 접근'이고 '정치적 이유'에 의한 정책결정이다. 현 정부가 내세우는 국정목표 중의 하나가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충청권 행정복합도시 건설, 공공기관 지방이전, 기업도시 건설 등의 계획이 바로 이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현 정부의 구체적 정책노선이다. 하지만 지난 4일에 발표된 수도권 규제완화 조치는 이러한 지역균형발전이라는 국정목표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수도권 규제완화는 수도권 기업의 지방이전 중단과 함께 지방소재 기업들의 수도권 진입 시도를 유도해 가뜩이나 어려운 지방경제를 더욱 위축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수도권 규제완화 조치는 분권과 분산이라는 현 정부의 '정치적 논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한 '선거적 논리'에 의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호남고속철도의 건설 역시 이 발언 시점을 감안해 보면 "국가전체의 발전"이라는 정치적 논리보다는 내년 지방선거 등에서 호남에서 잃어버린 지지를 회복하려는 선거적 논리에 의한 것이라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비행기 안 뜨는 지방 공항은 선거적 논리가 작동한 대표적 예다. 특정지역 공항의 건설에서 오는 편익은 그 지역주민이 주로 누리게 되며, 정치인은 공항건설을 다음 선거에서 자신의 업적으로 내세울 수 있다. 한편, 공항건설에 따르는 비용은 세금 증가 등에 의해 국민전체가 부담하게 되나, 비용이 국민전체에 분산됨으로 그 부담정도가 가벼워 조직화된 반대를 받지도 않고 공항이 건설된 지역을 제외한 다른 지역의 선거에서는 별 쟁점도 되지 못한다. 전체 국민의 부담으로 특정 지역 혹은 특정 집단에 혜택을 주는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인 정책이 실시될 수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정치적 논리보다 선거적 논리를 우선하는 것은 여야가 마찬가지인 것 같다. 농민표를 의식해 쌀협상 비준동의안의 국회 본회의 처리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것은 물론 '더 내게 하고 덜 받게 하는' 인기 없는 연금개혁 의제도 피하고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메워야 할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의 적자규모는 급증하고 있고, 국민연금 역시 이대로 가면 2047년에는 기금이 고갈될 것이라고 한다. 더욱 한심한 것은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정치권의 새판짜기 움직임이다. 지역주의 정치 타파를 내세우며 민주당과 갈라진 열린우리당이 민주당과의 재통합 논란에 휩싸여 있고, 자민련은 간판을 내리고 충청권을 중심으로 한 국민중심당(가칭)에 합류하기로 결정하였다. 잘못하면 호남당, 충청당, 영남당이라는 망국적 지역구도가 다시 살아날 지경이다.
제대로 된 정치를 이루기 위한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정치권이 생각하는 선거적 논리가 사실은 비논리라는 것을 국민이 보여주어야 한다. 정치적 논리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고, 이 정치적 논리에 따라 얼마나 일관성 있게 정책을 추진하고 그 성과를 거두었는가가 선거에서 유권자의 판단의 기준이 된다면 구태의연한 선거적 논리는 사라질 것이다.
정준표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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