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사람들은 지하를 싫어할까?

입력 2005-11-12 08:42:16

대구 사람들은 지하를 싫어할까? 이 물음에 대부분 사람들은 '그럴 것이다'라고 답한다. 이들은 지하를 싫어하는 이유로 첫 번째는 사고 악몽, 두 번째로는 탁한 공기를 꼽는다. '지하는 밀폐된 공간', '어두컴컴해 음침하다'는 등 지하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도 있는 게 사실.

3년 전 지하철 참사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던 강현석(가명·26·북구 복현동) 씨는 그 이후 한번도 지하철을 타지 않았다. 이유는 '악몽을 떠올리기 싫어서'. 강씨는 "2호선이 개통됐지만 막상 타려고 하니 아직은 두렵다"고 했다.

극단적일지 모르지만 대구시민들의 보편적 정서일지 모른다. 하지만 지하철 사고악몽은 막연한 두려움일 뿐 지하가 지상보다 위험하다고 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이젠 더 안전한 대피장소이자 지하철, 쇼핑공간 등 생활공간의 일부로 다가오고 있다.

전종국 영남대 심리학과 겸임교수는 "1995년 4월 상인동 가스폭발, 2003년 2월 중앙로역 방화 등 대형참사는 앞으로도 지울 수 없는 대구의 아픔"이라며 "하지만 이 때문에 지하공간이 두려움의 공간이 돼 외면받을 이유는 전혀 없다"고 밝혔다.

또 전 교수는 "대구는 아직 서울처럼 지하공간이 보편적이지만 차츰 시민들의 생활문화공간으로 자리 잡아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하가 더 좋다'는 사람은 드물다. 건축자재가 어지러이 널려있는 아파트, 빌딩 지하공간이 생각나고 반지하 공간에 사는 서민들의 설움도 연상된다. 지하가 일반적으로 임대료가 싸고 공간이 넓지만 쾌적하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까?

'땅 아래는 더럽다'고 생각하는 김일수(59·수성구 지산동) 씨는 "지하에는 뭔지 모르겠지만 쓰다만 물건들이 널려있고 구린 냄새가 나는 것 같아 무조건 싫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하는 먼지도 많고 몸에 해로운 성분도 많지 않겠는가 하는 막연한 생각도 실제와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와 올해 반월당과 중앙로 지하상가에 대해 미세먼지, 이산화탄소, 일산화탄소 등 인체에 유해한 10가지 항목에 대해 조사한 지하 실내공기질 측정기록부에 따르면 단 1개의 항목도 기준치를 초과하지 않았다.

지난달 1일 한국이엔씨에서 반월당 메트로센터 지하 실내공기를 조사한 결과에서 미세먼지는 47.5㎍/㎥으로 기준치(150㎍/㎥)의 3분의 1도 되지 않았다. 동성로 중앙지하상가 역시 지난달 27일 (주)한국환경엔지니어링에 의뢰해 실내공기를 측정한 결과 미세먼지 60.51㎍/㎥, 이산화탄소 297ppm 등으로 기준치에 훨씬 못미치는 안전한 수준.

지하철 역도 실내공기 유지기준은 합격점. 지난해 대구지하철공사가 (주)과학기술분석센터에 맡겨 측정한 자료에 따르면 대합실, 승강장 등 주요한 4개 항목의 전체 평균은 기준치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았다.

실제론 그렇지 않지만 지하를 싫어하는 것 같은 대구의 독특한 정서 때문에 쓴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많다. 지하에 셋방을 내놓아도 찾는 사람이 없고 지하상가 분양을 해도 찾는 사람이 없어 허탈하기만 한 것. 지하를 잘 활용해 돈을 벌려는 임대사업자들은 더 답답하다.

동성로에서 3년째 지하음식점을 하고 있는 전현기(41) 씨는 "1년 동안 손님들이 없어 하루종일 전단지를 뿌리며 홍보하러 다녔던 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며 "이제 자리를 잡았지만 지하라는 이유만으로 박대받는 것은 참기 힘든 고통"이라고 털어놨다.

반월당 지하상가 전문 골든부동산 컨설팅 김영배 대표는 "지하라는 선입견 때문에 상가분양에 큰 애로를 겪고 있다"며 "'당초 대박을 기대했다 쪽박 찰 정도로 대구사람들은 지하를 싫어하는가 회의감이 든다"고 불평했다.

대구에서 지하공간을 활용해 가게를 하고 있는 곳은 줄잡아 수백여 곳. 지하에서 사업을 해 본 상인들에 따르면 이 중 수익을 창출하고 있는 업소는 10곳 중 2, 3곳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젠 지하철 지하상가에만 1천 곳 가까운 가게가 들어섰다. 막연한 선입견도 달라질 때도 된 것.

경북대 사회학과 노진철 교수는 "단순히 지하라서 나쁜 점이 더 많을 것이란 생각은 갈수록 늘어나는 지하공간을 생활공간으로 받아들이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며 "뚜렷한 근거없이 '지하는 무조건 싫다'고 했던 대구의 정서도 차츰 바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권성훈기자 cdrom@msnet.co.kr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