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산동 박한철씨
박한철(38·대구 지산동·엔지니어링공제조합 대구지점장) 씨는 요즘 '노인학대' '부모 봉양 거부' 등과 관련된 언론보도를 볼 때마다 울화통이 치민다고 했다. 자기를 낳아주고 길러준 부모에게 어찌 그런 몹쓸 짓을 할 수 있느냐는 것.
박씨는 칠순의 부모를 모시고 산다. 25평짜리 아파트. 그리 넓다고 할 수 없지만 아내와 3명의 아이들까지 3대(代) 7식구가 알콩달콩 정겹게 지내는데는 별 어려움이 없다.
3대가 함께 사는 것도 요즘엔 흔치 않은 일이지만 박씨는 이웃 주민들에게는 '보기 드문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 김순모(73) 씨를 극진히 간호하고 있는 것.
"마른 하늘에 날 벼락이었죠. 우리 어머니에게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곤 상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6, 7년 전쯤 고향인 경기도 이천에서 농사일을 하시던 어머니께서 덜 익은 고추를 자꾸만 따 와요. '이상하다' 싶었는데 결국 수시로 사무실로 전화가 왔습니다. 어머니께서 사라지셨다고요. 당신께서 정신을 놓고 수시로 배회하신 거죠. 치매라는 사실을 그때서야 알았습니다."
가족들에게 치매는 견디기 쉽지 않은 고통이었다. 치매로 인해 박씨 어머니는 의사표현 능력을 상당 부분 잃었다. 배가 고프다는 의사도 제대로 전달 못하는 지경까지 이르렀고 용변 실수도 잦았다.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아내에 대한 험담.
"퇴근해 귀가하면 어머니께서 계속해서 아내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으셨어요. '쟤가 내 것을 가져갔다' 등 아내에 대해 나쁜 말씀을 많이 하셨죠. 처음엔 화가 나서 아내를 다그쳤습니다. 사실이냐고. 시간이 지나면서 치매 증상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도 퇴근해 들어오면 설거지하는 아내를 쳐다보며 '싫다'고 말씀하세요. 이런 형편 속에서도 꾹 참고 이해해 준 아내가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박씨의 부인은 이름을 밝히는 것도, 기자와의 인터뷰도 사양했다. 그리고 '당연한 일을 자랑처럼 말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박씨를 통해 전해 왔다. 박씨는 아내 자랑을 잊지 않았다. 아내가 있었기에 '자식 도리'를 할 수 있었다는 것.
"'101번째 프로포즈'라는 영화가 있었죠. 맞선을 엄청나게 많이 본 사람의 얘기였죠.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50번 가까이 봤을 겁니다. 그때마다 보기 좋게 딱지를 맞았죠. 이유요? 부모를 모시겠다는 제 고집 때문이었죠."
'마지막 맞선 상대'였던 아내는 박씨의 고집을 이해했고 결혼했다. 박씨는 부모를 모시기 위해 경기도 이천 본가에서 서울 방배동 직장까지 130km를 운전, 매일 출퇴근을 했고 아내는 시골집에서 힘든 시집살이를 계속했다. 불평 한마디 없이.
박씨는 상당히 심각한 상태에까지 갔던 어머니가 최근 많이 나아지셨다고 했다. '가족의 정'이 치매도 누그러뜨렸다는 것이다. "어머니께서 손자·손녀들을 좋아하세요. 아이들도 할머니를 따르고요. 가족의 사랑이 어르신들에게 큰 힘이 되는 것 같습니다. 2002년 대구로 발령을 받아 내려온 뒤론 대구시 치매 및 노인전문병원 부설 주간 보호센터에서 낮 시간을 보내세요. 이곳 프로그램도 어머니께 큰 약이 됐습니다."
박씨는 지난달 말엔 부모님을 모시고 불국사 단풍 구경을 다녀왔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바깥 나들이를 잊지 않는다. 도시에 사는 어머니의 갑갑증을 풀어드리려는 것.
"요즘 세상은 당연한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부모를 모시는 일, 그것은 자식으로서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당연히 할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주변 사람들은 저 보고 '용하다 용해' '특이하다'고 하는데 저는 지극히 정상적인 일을 할 뿐입니다." 그는 '모두가 정상을 회복하면' 노인문제란 단어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최경철기자 koala@msnet.co.kr
사진: 치매에 걸린 칠순의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박한철(38) 씨. 그는 '노인학대' 등에 관한 언론보도가 나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3대가 25평 아파트에서 함께 산다는 그는 한울타리 속에서 가족들이 서로 부대끼는 것이 어르신들에게 가장 큰 선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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