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국정홍보처 존폐 논란

입력 2005-11-10 11:29:03

국정홍보처의 존폐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이미 국회에 폐지법안을 제출한 야당은 국정홍보처가 국정은 홍보하지 않고 '노비어천가'나 부르고 있으니 규모를 축소시켜 그 역할을 다른 곳에서 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정부 측에서는 정책을 국민들에게 총체적으로 알리기 위해 국정홍보처를 더 강화해야 한다고 맞받아친다.

정부여당과 야당이 사사건건 마주치지만 국정홍보처 사안은 생각보다 훨씬 더 날카로운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참여정부는 과거 어느 정부보다 홍보 관련 기관을 확대 강화시켜왔기 때문이다. 기존 메이저 신문들의 '흔들기 횡포'에 맞대응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어떤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하기 위해서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신설된 홍보기관의 열성적인 활동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부정책은 많은 오해에 묻혀있다고 믿는 듯하다. 며칠 전의 한 예를 보아도 그렇다. 안병직 교수가 참여정부를 '건달정부'라고 지칭하자 청와대 정책실장이 직접 나서서, 건달이라면 하는 것 없이 논다는 뜻인데 정부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해왔는지 당장 안 교수에게 설명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한다. 정부의 일에 왜 이토록 오해가 많은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세상에 열심히 일을 해놓고 오해받는 것만큼 속 터지는 경우도 없을 것이다. 이런 마당에 국정홍보처까지 없애라고 하니 기가 찰 노릇이겠다. 지금쯤 정부 관계자들의 가슴이 새카맣게 타있을 거라는 상상을 하다보니 예전에 있었던 에피소드가 하나 떠오른다.

내가 소설 공부를 한다고 경기도에 살던 때였다. 집 주인이 마당에 제법 큰 소나무를 옮겨 심고 나무가 쓰러지지 않도록 지주목(支柱木)을 받쳐 놓았다. 지주목은 꺼멓게 폐유를 칠한 탓에 나무 표면에 솜가시가 까칠까칠하게 일어나 있었다. 이후 나는 무심코 지주목에 손을 댈 때마다 가시가 손에 박혀 애를 먹곤 했다. 어쩌다 손바닥으로 지주목을 쓸기라도 하면 온 손바닥이 고슴도치가 돼버릴 지경이었다. 나무 심은 조경회사 인부들이 왔기에 벌컥 화를 냈다.

"내 손 좀 보세요. 왜 기름칠을 해가지고 이 고생을 시켜요!"

"지주목을 만지면 안 된다고요, 전통(全統)이 폐유를 바르도록 지시했대요."

전통은 전두환 대통령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때가 1989년이고 권좌에서 물러난 뒤였지만 민심이 아주 사나울 때였다. 조경인부들에게도 지주목 가시에 당하는 것이 제일 고약한 일일 텐데, 그 화풀이를 전 대통령에게 돌린 거라고 옆의 사람이 설명해주었다. 물론 지주목에 폐유를 바르는 이유는 지주목이 썩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전 대통령이 이 얘기를 직접 들었다면 얼마나 약이 올랐을까. 사실이 아니라고 '홍보'라도 해야 할 판이다. '오해'가 바람 잘 일 없는 통치권을 두고서, 정권과 무관하게 뜬금없이 옛일을 떠올려본 것이다.

가장 활동적인 홍보기관을 가진 참여정부가 도리어 홍보에 애를 먹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보수신문들의 '흔들기 횡포'를 지나치게 겨냥하기에 앞서 그럴 만한 요소가 없는지 심각히 자성해 보아야 한다. '윗선'을 옹호하기 위한 다급한 발언이 오늘날 평균화된 국민적 심리에 금을 가게 하지나 않았는지, 홍보책임자의 침착성을 잃은 돌출발언이 정책설명을 오히려 저해할 만한 강한 역효과를 낳지나 않았는지, 정책홍보를 정치적 혹은 전략적 개념으로 활용하지나 않았는지 등을 말이다. 국정홍보처와 직접 관련 없는 기관들의 홍보형태도 살펴야 한다. 일례로 전파수신이 좋아 운전자들이 즐겨듣던 KBS1라디오만 해도 하루 종일 정부정책을 위주로 토론 프로그램만 돌리는데 누군들 채널 하나를 빼앗겼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이런 수다한 것들이 모여서 사람들은 국정홍보처의 폐지에 암묵적인 동의를 보내는 것이다.

국정홍보처가 폐지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을 터이다. 어느 면에서는 오히려 더 기능이 확장되고 전문화돼야 할 여지가 있다. 오늘날 사회가 얼마나 복잡한가. 홍보처 소속의 매체들은 정치색을 완전히 배재한 채 '확정된' 정책들을 아주 쉽게 설명만 해준다면, 필요한 이들마다 일부러 찾아서 살펴보게 될 것이고, 자연히 국정홍보처는 국민 속에 따뜻하게 자리 잡을 것이다.

엄창석(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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