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번째 연출작 찍는 임권택 감독

입력 2005-11-09 17:00:41

9일 오전 10시 서울 용산구 한남동 태흥영화사. 임권택 감독과 이태원 태흥영화사 사장, 정일성 촬영감독 등 세 명의 영화계 거목이 모처럼 한자리에 앉았다. 이르면 이달 말 촬영을 시작할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의 아역배우 오디션 자리다.

1차 심사를 거친 25명의 어린이들이 판소리와 연기, 카메라 테스트를 받았다. 만 7세부터 14세까지의 남녀 어린이들이 떨지 않고 자신의 장기를 발휘하기 위해 애쓰는 표정이 역력했다. 어린이들의 실력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이제 겨우 11살 남짓한 참가자들의 판소리 경력은 보통 4~5년에 이르렀다.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아역배우는 '천년학'의 주인공인 송화 역의 오정해와 동호 역 김영민의 어린 시절을 연기하게 된다. 세 명의 심사위원은 "아이쿠, 이쁘다", "천천히 한번 돌아봐라", "뭐 잘하지?"라며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하듯 주문했다.

만 7살 초등학교 1학년 여자아이가 춘향가의 '사랑가'를 간드러지게 부르고, 이제 북채를 잡은 지 1주일 됐다는 남학생은 오랜 소리 경력(?)으로 인해 어깨너머 배운 솜씨가 제법 제대로 된 폼을 내기도 했다.

오후 3시 25명의 참가자에 대한 실기 심사 후 1차 통과자를 거르기 전 임권택 감독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음에 드는 참가자들은 있나.

▲오디션을 하기 전 우리가 기대하는 상이 있지만 맞아떨어지는 경우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오디션을 하다보면 기대 밖의 좋은 모습이 들어올 때가 있다. 오늘도 그렇다. 우리가 좀 더 깊이 생각해 매력을 찾아야 한다.

--선발 기준은 무엇인가.

▲일단 소리를 잘해야 한다. 그리고 오정해, 김영민의 어린 시절 모습이 배어 있어야 한다. 또한 연기력도 요인이 된다.

--아역배우의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

▲출연 시간 자체로 보면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다. 그러나 송화와 동호가 어린 시절 서로에 대해 깊이 함몰되면서 그 감정을 평생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가져가기에 이 시기의 감정 표현이 관객에게 잘 전달돼야 한다.

--100번째 영화다. 어찌됐든 부담이 있을 텐데.

▲처음 주변에서 이 영화가 100번째 영화라고 의미 부여를 했을 때는 '100번째든, 101번째든 그게 무에 그리 중요하느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준비하다 보니 그렇지 않더라. 점점 부담이 생겼다. 이제 내가 죽어라고 찍어야지라는 생각이 든다.

--100번째 영화로 '천년학'을 선택한 이유는.

▲이청준 씨의 소리에 관한 단편소설이 세 편 있다. '서편제', 소리의 빛', 그리고 '선학동 나그네'다. 영화 '서편제'에서 '서편제'와 '소리의 빛'을 함께 담았다. '선학동 나그네'는 당시 자신이 없었다. 이 작품이 주는 몽환적 분위기를 영상으로 담기에 벅찼다. 그래서 미루게 됐고 세월이 흘렀는데,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다.('천년학'의 원작이 '선학동 나그네'다)

--'천년학'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나.

▲사랑 이야기다. 소리를 평생 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서편제'는 우리 소리가 갖는 감흥을 빨리 전달하기 위한 과제였다. 우리 소리를 눈으로 볼 수 있고, 읽어낼 수 있게 하는 것.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춘향뎐'을 통해서는 판소리가 갖는 깊은 맛을 조선시대 삶을 통해 진하게 드러내보이고 싶었다.

'천년학'에서 판소리는 하나의 효과음이다. 평생 소리를 하는 남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리려고 한다. 종내에는 그런 사랑이 판소리로 승화돼, 소리와 사랑이 어우러지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한마디로 말하면 멜로 영화인 셈이다.

--어떤 부담감이 가장 괴롭히나.

▲'서편제' 아류라는 말을 들어서는 안된다. '서편제'에서와 마찬가지로 송화와 동호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언뜻 '서편제' 후속작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는데 그러면 안된다. '서편제'를 이어받기는 하지만 전혀 다른 작품이 돼야 한다는 것, 그것이 가장 힘들다.

--야외 촬영지는 정했나.

▲이 소설의 배경인 장흥을 비롯해 광양, 제주 등지에서 촬영한다. 소설에서 눈이 먼 소리꾼 송화와 고수 동호가 만나 소리로 하나될 때 마치 산이 학처럼 움직였다는 절정을 이루는 장면을 담을 수 있는 곳이 있다. 아버지 유봉으로 인해 남매가 돼버린 두 남녀의 애절한 사랑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장소다. 정일성 감독과는 이미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계속 이야기를 나눠왔다.

--언제 촬영을 시작하나.

▲모든 준비가 완료된 후 이르면 이달 말, 늦어도 12월 초에는 크랭크 인할 예정이다. 3월께 촬영을 마칠 것이다.(연합뉴스)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