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심(詩心)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가을날 오후 노란 은행잎이 지천으로 뒤덮인 오솔길을 걸으며, 또는 초여름 해질녘 저녁연기 피어오르던 고향집 뒷산 하늘에 붉게 타오르던 노을을 떠올리며, 겨울 아침 마당 어귀에 하얗게 내려쌓인 첫 눈을 보고도 아무런 감흥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사람들은 누구나 가슴 한 구석에 주체할 수 없는 시의 덩어리를 하나씩 품고 있다"던 어느 시인의 말이 생각난다. 과연 그럴까. 요즘 세태를 보면 웬지 이 말에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최근 어느 고등학교 교실의 싸움장면을 보고는 차라리 이 말을 부정하고 싶다. TV 뉴스로도 공개된 두 남학생 간의 싸움질보다 구경꾼들의 행태에 섬뜩한 느낌마저 들었다.
일방적으로 얻어맞던 학생이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졌는데도 싸움판을 둘러싼 남녀 학생들이 이를 말리기는커녕 휴대전화로 동영상 촬영을 하며 박수를 치고 즐기는 모습이라니. 예전같으면 문학적 감수성이 많은 여학생들이 창밖의 낙엽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겨있을 이 가을에.
도대체 학생들의 마음 속에 무엇이 자리하고 있기에…. 학생들은 컴퓨터 게임 속의 폭력 장면과 교실 안의 싸움을 동일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얼마전 수원의 어느 아파트 앞길에서 벌어진 사건은 더 가관이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 두명이 취객들에게 둘러싸여 무차별 폭행을 당하고 있는데도, 아파트 주민들은 재미있는 구경거리라도 생긴듯 디지털카메라로 동영상을 찍으며 즐거워했다는 것이다.
시심을 잃어버린 사람들이다. 문학적 서정과는 담을 쌓아버린 사회의 한 단면이다. "요즘 사람들은 시를 읽지 않는다"고 걱정하던 한 원로시인의 목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일간 신문에서 시와 해설을 연재하고 있고, 시내 버스 승강장과 지하철역에 명시를 적은 판넬을 붙여놓기까지 했으나 시민들은 큰 관심이 없는 듯하다.
옛날 아이들은 서당에 가서 천자문만 떼면 시짓기부터 배웠다. 시는 오랜 세월 인재의 등용문인 과거시험의 과목이기도 했다. 어려운 한시는 차치하고라도 멀리 신라향가에서 고려가요 그리고 우리 고유의 정한을 오롯이 담은 주옥같은 시조는 또 얼마나 많은가.
이제는 '서당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도 사전에서 지워야 할까보다. 시와 시인의 홍수 속에서 독자들이 좋은 시인과 작품을 가려낼 여력을 잃어버려서 일까. 시의 해석과 비평이 너무 어렵거나 주례사처럼 찬사만 늘여놓아 시를 외면하는 것일까.
컴퓨터 게임을 즐기는 듯한, 최소한의 인정마저 실종된 싸움판을 보면서, 정말 시가 죽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사춘기 시절 애송시 한두편이나마 가슴에 담아본 경험이 없는 세대들이 꾸려나갈 미래 사회는 지금보다도 더 삭막할 것 같다. 서정(抒情)이 메말라버린 젊은이의 가슴이란 나무 그늘이 없는 여름날의 도심(都心)과 무엇이 다를까.
조향래(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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