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11월 미국 해군 정보국 정보분석가 한인교포 로버트 김과 주미 한국대사관 무관 백동일 대령은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해군정보교류회의에서 운명적인 첫 만남을 가진다. 그리고 약 2년 후 1996년 9월 24일 워싱턴 미군기지에서 열린 한국대사관 무관부 주최 '한국 국군의 날' 기념 리셉션에 백 대령의 초청으로 참석한 로버트 김은 FBI 요원에게 체포된다.
◇ 그렇게 끌려간 로버트 김은 국가기밀문서 유출 혐의로 징역 9년과 보호관찰 3년을 선고받고 9년여의 수감생활을 마친 뒤 지난달 27일 형집행정지로 석방됐다. 스파이라는 이름으로 황금 같은 기간들을 고통의 수렁 속에서 허덕여야 했다. 일반인들은 스파이라면 007과 같은 영화 속의 액션을 떠올리거나 마타하리, 킴 필비 또는 배정자 같은 드라마틱한 삶으로 당대를 풍미한 유명 스파이들을 떠올린다.
◇ 지난 6일 한국에 온 로버트 김에게 스파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온갖 고험를 겪었으나 너그롭고 평화로운 풍모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도착 성명에서 "나는 스파이가 아니었다. 한국 정부가 고용한 사람도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유출한 정보도 미국의 안보에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미 정부의 규정을 어기게 됐고, 국민에게 심려를 끼친 데 대해 심심한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했다.
◇ 영국인으로서 소련에 포섭돼 암약, 20세기 최대의 스파이 중 하나로 꼽히는 킴 필비는 정체가 드러나자 소련으로 망명해서 1988년 죽을 때까지 소련에서 칙사 대접을 받았다. 죽은 후에도 필비 얼굴을 넣은 우표까지 발매해서 소련은 그를 추모했다. 필비는 매국노라는 비난에 대해 "나는 평생 소속이 없었다. 소속이 없는데 배신자라고 하는 것은 당치 않다"고 반박할 정도로 뻔뻔했다.
◇ 로버트 김이 체포되고 사건이 표면화하자 당시 한국정부는 "로버트 김은 미국 시민 신분이기 때문에 한국이 관여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 입장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온갖 고초를 겪은데도 불구하고 로버트 김은 미국이나 한국정부를 원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와 그의 부인의 머리칼은 파뿌리처럼 하얗게 변했다. 성성한 은발에 애국자의 자취가 엿보였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애국자의 모습을 보면서 그러나 국민은 못난 정권들의 한심한 모습을 본다.
김재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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