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최후의 만찬은 누가 차렸을까

입력 2005-11-05 09:24:18

최후의 만찬은 누가 차렸을까/로잘린드 마일스 지음/신성림 옮김/동녘 펴냄

질문 하나. 역사책에는 왜 여성이 등장하지 않을까. 언제부터, 왜,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가 배우는 2천년 인류사에는 남자만 있지 여자가 드물다. 그럼 그동안 여성들은 어디에 있었을까?

질문 둘. 예수 최후의 만찬은 누가 차렸을까? 만일 남자 요리사가 차렸다면 기록에 남음은 물론이요, 열광하는 추종자를 거느린 성인이 되어 그를 기념하는 축일이 생기지 않았을까?

다소 역설적인 질문이지만 세계사의 한 축으로 '여성'을 두고 본다면 이러한 의문은 쉽게 풀린다. 선사시대부터 현대사회까지 세계의 여성들이 대부분 묻혀졌기 때문이다. 이런 남성에 의해 왜곡된 세계사에 대한 합리적 반박과 '인류 역사의 중심에 여성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방대하게 펼치는 저서 '최후의 만찬은 누가 차렸을까'는 그동안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무시되고 삭제된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되살려낸다.

영국의 여성학자이자 작가인 저자 로잘린드 마일스는 한발 나아가 뛰어난 여성영웅들과 이름 없는 민초 여성들의 드라마틱한 이야기와 숨은 이야기를 수많은 사례를 통해 펼친다.

프랑스의 영웅 잔다르크는 이단으로 몰려 화형된 것이 아니라 남장을 했기 때문에 화형됐다. 또 '등불을 든 여인'으로 미화된 나이팅게일은 단 한번도 등불을 든 적이 없다. 오히려 그는 군의 지휘관이 필요한 약품을 주지 않자 야밤에 '망치를 들고' 의약품 저장실을 부수고 들어갔는데, '망치를 든 여인'은 지나치게 거친 이미지란 이유로 등불로 대체됐다는 것. 또 원탁의 주인은 아서왕이 아니라 귀네비어 여왕이었다는 사실도 역사적 자료와 함께 들추어낸다.

특히 '모권사회'로 상징되는 선사시대 여성의 지위마저 오늘날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남성의 눈으로 왜곡해온 점을 근거자료를 통해 조목조목 반박한다.

예를 들어 사냥하는 남성이라는 가설에 집착하던 인류학자들은 돌촉, 화살이 인류 최초의 도구였다고 주장하지만, 사냥은 훨씬 뒤에 시작된 것이다. 그 전에 이미 뿌리나 알뿌리를 파내거나, 식물을 먹기 편하게 가루로 만드는 것 같은 활동을 위해 뼈나 돌, 나뭇가지 등을 사용했다. 이런 모든 것이 여성들의 도구였다.

아프리카 개화에 힘쓴 여성 여행가 메리 슬레서, 최초로 아라비아 반도를 찾아간 앤 블런트 부인, 자메이카 여성 사업가인 메리 시콜…. 수많은 사례는 분노가 표출되고 매우 전투적인 기존 페미니스트 책과는 달리 신랄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은 씩씩함으로 술술 읽힌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여자다. 내 함성을 들어라…. 우리의 해방을 위해 노력할 사람은 우리 자신밖에 없다. 사랑, 투쟁, 일, 이것이야말로 세계여성들의 과거와 미래, 즉 역사다".

노진규기자 jgroh@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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