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태몽 만들기

입력 2005-11-04 08:47:22

"수십 마리의 말이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달려오는데, 자세히 보니 앞줄 한가운데 백마가 무리를 이끌고 오는 거라. 그놈 참 잘생겼다 했더니 그 백마가 나를 향해 무섭게 달려들더라니까."

전업주부였다가 현재 여성리더십 인기강사로 활약하고 있는 이의 어머니가 꾸셨다는 태몽이야기다. 마치 태어날 때부터 이 사람의 사회적 성공을 예견한 듯한 현몽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사춘기 시절 이 태몽을 들려주며 "넌 나중에 잘 될 거다!" "큰일 할 거다"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단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녀의 진로가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IMF 사태로 인한 구조조정으로 은행 다니던 남편은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었고, 어렵게 시작한 사업이 맘먹은 대로 되지 않아 아파트를 팔고 달동네로 옮겨야 할 때도 있었다. 힘들 때도 많았지만 태몽을 떠올리며 "난 잘될 사람이야"라는 자기 암시를 했단다. 악착같이 노력해 소위 사회적 성공이란 것을 이루고 난 어느 날, 신기한 마음에 어머니에게 태몽이야기를 꺼냈다고 한다. 그런데 어머니는 "무슨 태몽?"이냐며 전혀 내용을 모르시더란다. 알고 보니 사춘기 시절 들려주었던 태몽은 잘난 형제들 사이에서 기죽어 있는 딸내미 힘내라고 만들어낸 어머니의 순수 창작물이었다.

흔히 유명한 인물이나 위인들의 탄생에는 상서로운 조짐과 전설들이 전해 온다. 위인이 못되는 범인(凡人)이라 할지라도 남자 아이들에게는 대개 "집채만한 구렁이가 발등을 물었다", "호랑이가 치마폭으로 달려드는 꿈을 꾸었다"는 둥 위인들 못지않은 태몽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지금껏 만나본 여성들 중에는 근사한 태몽은커녕 자신이 태어난 정확한 시간을 모르는 경우도 많았다. 농촌 출신일 경우는 "개 밥 줄 때", "쇠죽 끓일 때"인 사람이 제법 될 정도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지만 여자로 태어난 것이 죄가 되는 경우도 허다하고, 딸아이 낳은 산모가 미역국도 못 넘기고 며칠 내리 울기만 했다는 이야기도 비일비재하다.

부모의 태도는 자녀가 미래의 비전을 키우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성공한 여성은 성별에 관계없이 자식의 선택을 지지해주고 적극적으로 격려해주는 부모를 둔 경우가 많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이미 알아챘겠지만 이 글의 제목이 '태몽 꾸기'가 아니라 '태몽 만들기'가 된 연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여러분의 딸아이에게 별다른 태몽이 없다면, 이제부터라도 근사한 태몽 하나씩을 만들어 주자. 거짓말이면 어떠랴.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딸들에게 긍정적인 힘이 될 수도 있는데….

정일선(경북여성정책개발원 수석연구원)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