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억을 들고 튄 여자를 뒤쫓는 건달과 형사가 잘못 찾아든 섬 마파도. 거기엔 다섯 명의 엽기 할매가 살고 있다. 그 중 압권은 단연 욕쟁이 할매 진안댁(김수미 분). 치뜨기만 해도 사람을 기절초풍시킬 만한(?) 눈빛에다 입만 열면 욕이 튀어나오는 할매 앞에서 두 남자는 고양이 앞의 쥐다. 하지만 욕을 달고 사는 할매도 알고 보면 속정 깊고 따스한 그냥 할매다. 영화 '마파도'는 걸쪽한 욕설 속에 두 젊은이와 다섯 할매들 간의 엎치락뒤치락 정이 배꼽을 살살 간질인다.
▲38년째 문경새재를 지키는 욕쟁이 할매 황학순 할머니. 새재에 온 각계각층의 사람들 중 일부러 할머니의 밥집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맛깔스런 음식맛도 그러려니와 할머니의 재치 있는 입담과 걸쭉한 욕설이 그리워서다. 그들에겐 할머니의 욕은 욕이 아닌 천연조미료이다.
▲소문난 욕쟁이 할매 식당들은 전국 어디에나 있다. '욕쟁이 할매 해장국', '욕쟁이 할매 손칼국수','''. 대개는 작고 낡고 허름하기까지 한 밥집들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굳이 길을 물어서라도 찾아간다. 악의 없고 인정 넘치는 욕이 오히려 어린 시절 이웃집 할매처럼 친근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할매들의 이런 구수한 욕과는 질적으로 다른 온갖 욕들이 우리 사회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나고 있다. 상대방에게 상처 주고 모독감을 느끼게 하며 사회를 황폐하게 만드는 욕이다. 특히 청소년들의 욕설은 위험 수위에 달해 있다. 말끝마다 욕을 달지 않으면 대화가 안 될 만큼 욕설이 일상화되어 있다. 어른들도 예외가 아니다. 무분별한 인터넷 채팅 문화와 조폭 영화 등에 영향 입은 그릇된 언어 습관이 우리 사회를 중독시키고 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전교조 부산지부 홈페이지에 올려진 'APEC 바로 알기 수업안'의 동영상이 심한 욕설을 담고 있어 큰 파문이 일고 있다. APEC의 실상을 알린다는 이 자료엔 미국 부시 대통령이 쉴새없이 "퍽(Fuck)","새끼" 같은 욕설을 내뱉는 장면들이 들어 있다. 여론의 세찬 비판에 몰린 전교조 부산지부가 홈페이지의 동영상을 삭제하긴 했지만 파문이 쉬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수 년 전 미국에선 언어폭력과 험담이 위험 수위에 와있다는 여론에 따라 워싱턴을 중심으로 '고운말 쓰기 운동(Words Can Heal)'을 벌인 적이 있다. 차제에 우리도 고운말 쓰기 운동이라도 벌여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전경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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