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논단-오바하지 말자.

입력 2005-11-01 11:46:41

1.

지난 주 일제의 한센병 격리정책에 의해 소록도에 갇혀 노역, 착취, 단종을 겪으며 평생을 고통 받았던 사람들의 피해보상 청구소송이 일본 도쿄지방법원에 의해 기각됐다. 일본, 자국 환자들에겐 이미 보상했다. 반기문 장관이 고이즈미 총리에게 그 부당성에 대해 직접 유감을 표했단다. 반드시 항소심 지켜 볼 일이다. 그런데 대부분 언론이 다룬 이 소식에 개인적으로는 유감인 지점이 하나 더 있다. 호칭이다. 언론은 그들을 '한센인'이라 했다.

2.

호칭이란 게 애초 일방적인 법이다. 그렇게 불릴 사람들과 부를 사람들의 전격 회동결과로 호칭 결정되는 법 없다. 특히 다수가 소수를 칭할 때 그리고 그 다수가 권력관계의 우위를 점할 때 다수는 언제나 자기중심적이고 비정하다. 봉사, 장님, 맹인, 소경이란 호칭은 특정 신체기능의 작동여부만 주목한다. 인간에 대한 배려는 없다. 미국에서 수입된 정치적 올바름이란 개념은 바로 이 도덕적 결여를 만회하려는 의도다. 장애, 성별, 인종, 종교, 직업, 문화 등의 차이를 차별의 근거로 삼아선 안 되며 편견과 고정관념을 강화할 수 있는 호칭은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거. 여기까진 바람직한 소리다. 문제는, 오바다.

3.

장애우. 장애자가 비하의 뉘앙스가 있다며 만든 호칭. 이건 장애를 가진 사람을 시혜의 대상으로 보고 그들도 우리들의 친구라며 장애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을 훈계하는 호칭이다. 그들을 친구라 불러야 한다는 소린 반대로 그동안 그들을 전혀 친구처럼 대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그러나 이 호칭으로 죄책감은 덜었을지 몰라도 정작 장애인에 대한 차별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강화된다. 이 호칭은 장애인을 비장애인의 친구로서, 상대적 객체로만 존재케 한다. 처음부터 나는 누구다가 아니라 나는 너의 친구라 말하란 소리니까. 장애인 스스로는 쓸 수 없는 호칭인 게다. 게다가 장애인 개개인이 모든 사람의 친구가 되고 싶은지, 물어는 봤나.

한센인도 같다. 이 사안 앞에 우린 모든 책임은 일본 것인 양 한다. 그러나 그들을 격리시킴으로 이제 우리는 안전해지는구나 하는 안도감은 조선총독부의 일제 관료들만 느낀 게 아니다. 한센인이란 용어는 그 죄의식을 담고 있다. 하지만 에이즈인, 소아마비인이라 하지 않는다. 이런 호칭으로 불편한 마음을 가리고 심리적 부채나마 덜려는 수작은 인간적이긴 하다. 하지만 이런 호칭은 자기 마음 편하자고 정작 당사자를 지속적으로 구분 짓고 결과적으로 차별하게 만드는 거다. 전염성이 극히 일부의 환자에 국한된 데다 그마저 약만 복용해도 거의 100% 완치되기에 이젠 그저 일반 피부질환 정도에 불과하게 된 지 오래인 이 병을 앓는, 일 년에 전국적으로 20명도 안 되는 사람들은 한센인이 아니라 한센병 환자다. 만약 한센병 환자 중 일제 고초를 겪은 분들만 따로 특정하고자 한 용어라면 구분하여 설명했어야 했다.

4.

독일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버스에 승차하려하자 버스의 한쪽 면을 기울여 계단의 턱을 없애고 휠체어를 탄 사람이 스스로 바퀴를 굴려 버스에 올라타도록 하는 걸 본 적 있다. 독일인들의 인간애가 유난해서 그랬다 생각지 않는다. 그들이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남의 도움 없이 버스를 탈 수 있도록 한 쪽으로 기울어지는 버스는 만든 이유는 장애인을 특별 대우하거나 불쌍히 여겨서가 아니다. 밧줄이나 장비의 도움 없이 누구나 1층에서 2층을 갈 수 있게 하기 위해 계단이란 게 발명됐다. 마찬가지다. 그들이 그런 버스를 만든 이유는 장애인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반대로 그 '누구나'에 장애인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누구나 버스를 타고 싶으면 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도 당연한 사회구성원이니까. 올바른 정치적 올바름이란 그런 거다.

호칭 가지고 오바하지 말자. 얄팍하기만 하다.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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