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매일 여성 한글백일장/일반부 운문> 편지

입력 2005-10-28 11:36:48

박경미 / 구미시 봉곡동

터잡고 앉은 소나무 밑

솔잎 하나

원고지 위 떨어집니다.

칡넝쿨처럼 툭 불거진 힘줄로

일궈낸 비탈 밭 위

동그랗게 자리잡은 아버지 묘소엔

봄마다 솔향기가 흐르는데

산밭 파 일구다 보면

아직도 툭툭 튀어 나오는

아버지의 백 고무신

걸음 걸음으로 길을 내놓으시던

소롯길 위 억새꽃엔

향연처럼

아버지 희끗한 백발이

바람타고

흩날리는데

허, 그래 내 알지 알어

퀭하니 묽은 눈으로

마지막 인사하던 아버지의 말씀

그 해 봄 솔향기처럼 번져

지금 내 원고지 위

솔잎되어 떨어집니다.

더도 덜도 말고

솔향만큼만 그윽하게 살라시던

아버지의 유언

병풍 속에 서 있는데

어디일까요

내 작은 손으로

솔꽃 한 송이 피울 수 있는 곳은

언제일까요

묘소 에워싼 소나무처럼

잎 다 진 우리네 뜨락에

그 푸르름 꿋꿋하게

수 놓을 수 있는 날은

터잡고 앉은

금오산 잔디밭 소나무 밑

편지 한 장

원고지 위 떨어집니다.

솔잎처럼 올곧게 살다가라는

아버지 편지 한 장

가을바람 타고

소롯이 내립니다.

써봐도 부치지 못할

답장 한 장

돗자리 위에서

젖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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